"우린 그저 소변을 보고 싶을 뿐이라고요(We just want to pee)."

 

트랜스젠더 운동가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다. 자기들(트랜스여성)은 공중화장실에서 오줌을 싸고 싶을 뿐이라고. 부득불 여자화장실에서 오줌을 싸야 하는 이유를 물어보면 남자들에게 괴롭힘과 폭력을 당해서라는데, 트랜스여성들이 여자들에게 저지르는 성범죄도 마찬가지로 문제 아니냐고 하면 그거는 그냥 소수의 사례이며 일반화하면 안 된다고 한다. 물론 오줌 쌀 권리만 요구한다는 캐치프레이즈조차 거짓말이다. 여성들만의 쉼터, 여성 교도소, 여성들의 권력, 여성들이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낼 권리, 여성들의 프라이버시부터 법이나 사전 상의 여성이라는 말의 정의까지 남김없이 빼앗고자 하는 것이 트랜스젠더리즘이다. 그럼에도 천연덕한 표정으로 그저 오줌만 싸고싶다고 앵무새처럼 지껄이는 이들에게는 정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Mumsnet이라는 엄마들 위주 커뮤니티?에서 BickerinBrattle라는 유저가 "우린 그저 소변을 보고 싶을 뿐이라고요."라는 말이 숨기고 있는 진실들을 낱낱이 밝히는 글을 2019년에 올렸다가 삭제당했는데, 이를 본 사람들이 인터넷에 퍼뜨려 내 눈에도 띄었다. 짧지만 아주 명료하게 트랜스젠더리즘의 실체를 폭로하여 인상깊었고 번역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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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just want to pee.

"우린 그저 소변을 보고 싶을 뿐이야.
And use your changing rooms.

너네들 탈의실도 사용하고 싶을 뿐이고.
And shower beside you in the gym.

체육관 샤워실에서도 너희들 곁에서 샤워하고 싶을 뿐이고.
And sleep beside you in the hostel.

호스텔에서도 너희들 옆에서 자고 싶을 뿐이고.
Also sleep beside you in hospital.

그리고 병원에서도 너희들 곁에서 자고 싶을 뿐이야.
And if you’re a lesbian, we want to fuck you with our lesbian penis.

만약에 너희들 중 레즈비언이 있다면, 우리의 레즈비언 자지로 너희를 따먹고 싶어. 
We just want to take your allotted women’s shortlist spaces.

우리는 그저 여자들에게 할당된 직함을 차지하고 싶을 뿐이야.
And win your women in STEM or business or arts awards.

이공계 여성, 여성 경영인, 여성 아티스트들에게 주는 상을 타고 싶을 뿐이고.
And count as you for pay gap data.

성별 임금 격차 데이터에도 여성으로 계산되어 들어가고 싶을 뿐이고.
Also for the crime we commit, when counted statistically.

그리고 우리가 저지르는 범죄도 여성들이 저지른 범죄로 통계에 반영되었으면 하는 바람 뿐이야.
We really just want to pee.

우린 그저 소변을 보고 싶을 뿐이야.
And also play on your rugby and football teams.

여성 럭비팀이나 여성 축구팀에서도 뛰고 싶을 뿐이고.
And win your gold medals and set your world records.

너희들의 금메달이나 세계기록도 가지고 싶을 뿐이고.
And your women’s scholarships.

너희들의 장학금도 따고 싶을 뿐이야.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to you how someone identifies?

누가 어떤 성별로 정체화를 하든지 간에 너희랑 무슨 상관이라는 건데?


We just want to pee.

우린 그저 소변을 보고 싶을 뿐이라고.
That some of us film ourselves wanking in your cubicles and post the videos online — you can’t judge a group by a few bad apples.

우리 중에 몇몇이 너네 화장실에서 자위를 하고 그걸 찍어서 인터넷에 올리는 거. -- 그런 소수의 사례로 전체를 일반화하지 마. 
We just want to pee and you can’t blame us that some of us also rape you and get imprisoned with you in the female estate.

우린 그저 소변을 보고 싶을 뿐이야. 그러니 우리 중에 몇몇이 너희를 강간하고 너희들을 강간한 죄로 너희들과 같이 여성교도소에 같이 수감된다고 하더라도 우리를 탓해서는 안 돼. 
We also want into your rape and DV refuges.

거기다 너희들의 강간 피해자 쉼터나 가정폭력 피해자 쉼터에도 입소하고 싶어. 
And your support groups.

너희들의 서포트그룹에도.

We just want to pee beside you, change beside you, shower beside you, sleep beside you, be in the scrum beside you, stand on the podium beside you, take from you, do time with you, and fuck your lesbian vagina

우린 그저 너희들 곁에서 소변을 보고 싶을 뿐이고, 너희들 곁에서 옷을 벗고 싶을 뿐이고, 너희들 곁에서 샤워를 하고 싶을 뿐이고, 너희들 곁에서 잠들고 싶을 뿐이고, 너희들과 같이 운동을 하고 싶을 뿐이고, 너희들 옆에서 포디움에 서고 싶을 뿐이고, 너희들의 것을 빼앗고 싶을 뿐이고, 너희들과 같이 수감생활을 하고 싶을 뿐이고, 레즈비언들과 섹스를 하고 싶고 싶을 뿐이고,
And gaze at you everywhere and anywhere but inside a private home because there is nowhere you can exclude us.
개인 가정집을 제외한 어떠한 공간에서라도 너희들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싶을 뿐이야. 왜냐면 너희들은 절대로 우리에게서 벗어날 수 없거든.

Oh — and by “you” we also mean your daughters, of whatever age.

아 -- 그리고 "너희들"에는 너희들의 딸들도 포함이되는 거 알지? 나이 불문하고 말이야.


And I forgot- we also want you to stop calling yourselves women, stop referring to your pregnancies, menstruation, vaginas, uteri, cancers, or breastfeeding in any way that associates those with women — because that hurts our feelings.

까먹을 뻔했는데, 너희들이 너희들을 여자라고 부르는 것도 좀 그만했으면 좋겠어. 너희들의 임신도, 월경도, 질도, 자궁도, 여성암도, 모유 수유도 여성이랑 관련이 있는 것처럼 언급하면 안 돼. -- 왜냐면 우리 기분이 엄청 상하거든. 
If you cannot accede to every one of our wishes, we’ll threaten you with rape and death online, if possible get the police to act on our complaints about you, and notify your employer of your bigotry.

위에 말한 모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우리는 너희를 강간하거나 죽이겠다고 협박할 것이고, 경찰을 불러서 너희들의 악행에 대해 조치를 취하길 요구할 것이고, 너희들 고용주들에게 너희들의 트랜스혐오를 알릴 거야. 
And if you try to organise protest against any of this, we’ll harass your venue, make a bomb threat, beat you to the floor, have the police eject you though you’re only sitting on chairs eating pizza, threaten you with baseball bats, and —
now — organise a city council to limit your right to speak about yourselves and your issues.
만약 위에 말한 요구에 너희들끼리 모여서 항의하려 한다면, 너희들이 모이려는 시설 운영진을 괴롭히고, 폭탄 테러 협박을 하고, 때려눕히고, 그냥 의자에 앉아 피자를 먹고 있는 너희들을 경찰을 시켜서 강제로 내보내게 하고, 야구방망이를 들고 협박하고, -- 시의회를 조직해 너희들이 너희들 자신들에 대해서, 너희들의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권리조차 제한해버릴 거야. 

Because your words are hate.
왜냐면 너희들의 말은 트랜스젠더 혐오니까. 


If you don’t like any of this — stay home.
이 모든 게 싫으면 -- 그냥 집에 얌전히 있어.
We just want to pee."

우린 그저 소변을 보고 싶을 뿐이라고."

 

 

 

 

 

---------------------------------- 원문 --------------------------------------

 

"We just want to pee.
And use your changing rooms.
And shower beside you in the gym.
And sleep beside you in the hostel.
Also sleep beside you in hospital.
And if you’re a lesbian, we want to fuck you with our lesbian penis.
We just want to take your allotted women’s shortlist spaces.
And win your women in STEM or business or arts awards.
And count as you for pay gap data.
Also for the crime we commit, when counted statistically.
We really just want to pee.
And also play on your rugby and football teams.
And win your gold medals and set your world records.
And your women’s scholarships.
What difference does it make to you how someone identifies?
We just want to pee.
That some of us film ourselves wanking in your cubicles and post the videos online — you can’t judge a group by a few bad apples.
We just want to pee and you can’t blame us that some of us also rape you and get imprisoned with you in the female estate.
We also want into your rape and DV refuges.
And your support groups.
We just want to pee beside you, change beside you, shower beside you, sleep beside you, be in the scrum beside you, stand on the podium beside you, take from you, do time with you, and fuck your lesbian vagina
And gaze at you everywhere and anywhere but inside a private home because there is nowhere you can exclude us.

Oh — and by “you” we also mean your daughters, of whatever age.
And I forgot- we also want you to stop calling yourselves women, stop referring to your pregnancies, menstruation, vaginas, uteri, cancers, or breastfeeding in any way that associates those with women — because that hurts our feelings.
If you cannot accede to every one of our wishes, we’ll threaten you with rape and death online, if possible get the police to act on our complaints about you, and notify your employer of your bigotry.
And if you try to organise protest against any of this, we’ll harass your venue, make a bomb threat, beat you to the floor, have the police eject you though you’re only sitting on chairs eating pizza, threaten you with baseball bats, and —
now — organise a city council to limit your right to speak about yourselves and your issues.

Because your words are hate.
If you don’t like any of this — stay home.
We just want to pee."

Posted by 쟁연오
,

제목: 데미 로바토와 여성됨으로부터의 탈출구

원제: Demi Lovato & The Womanhood Trapdoor

원작: 유튜버 Lisa Mich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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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실이 당신을 불편하게 한다고 해서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수많은, 여러 계층의 여자들이 자기가 여자라는 사실이나 여성됨의 여러 측면에서 불편함을 느낀다. 어떤 여자들은 자기 신체에 불편함을 느낀다. 고통스럽거나 불규칙적인 월경, 자궁내막증(endometriosis), 난소 낭종(ovarian cysts), 다낭성 난소 증후군(PCOS), 외음부통(vulvodynia), 요로감염(urinary tract infection), 무거운 유방에서 유발되는 허리통증 등 여러 가지 이유에서 비롯된다. 다른 어떤 여자들은 심리적인 불편함을 느끼기도 하는데, 사회에서 여자들에게 기대하는 여성상, 성적으로 이상화된 여성상에 부합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그 요인이다. 그러한 여성상은 여자들에게 본인들의 성향과 욕망에 무관하게, 조용하고 상냥하며 주어진 현실에 만족하는 한편, 순종적이고 굴종적이기를 요구한다. 

그러한 신체적, 심리적인 불편함은 물론 실재하며 그로 인해 큰 고통을 야기하겠지만, 실제 현실 세계의 사실들을 왜곡시키지는 못한다. 만약 여아의 몸을 가지고 태어나서 성인으로 자라난다면, 당신은 여자가 될 것이며, 평생 동안 그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너무 당연한 사실이라 굳이 밝히는 것도 우스꽝스럽지만, 어떻게 하겠나? 우리가 당면한 상황에 필요한 것을. 여성됨이라는 것은 우리가 아무 의미나 부여해도 상관이 없는 유동적인 개념이 아니다. 여성됨은 구체적이고, 물리적으로 관찰 가능하며, 측정이 가능한 상태이다. 여성됨은 심리적인 상태도, 추상적인 개념도 아니며, 불편하다고 해서 벗어던질 수 있는 복장은 더더욱 아니다. 인류의 절반이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그 현실이 주는 불편함에서 도망치려하기 보다는,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불편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근에 대중 가수 데미 로바토(Demi Lovato)가 자신이 '논바이너리'라고 불리는 포스트모더니즘적인 개념으로 정체화를 했다고 "커밍아웃"을 했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니까... 그게 대체... 무슨 뜻인데...? 수상한 단체 휴먼라이츠캠페인(Human Rights Campaign)은 논바이너리를 이렇게 정의한다. "남자이면서 동시에 여자이고, 남자와 여자 그 중간쯤에 있거나, 혹은 이러한 범위에서 완전히 벗어나있는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이르는 말." 이게 당췌 무슨 개소린지... 어쨌든 이러한 논바이너리의 정의나 데미 로바토의 커밍아웃도 결국에는 실제 현실을 바꾸지는 못한다. 

잠깐 토막 상식: 1633년에 카톨릭 교회에서는 태양이 지구를 중심으로 해서 돈다는 자신들의 근거 없는 착각을 공고히 하고 싶었다. 그래서 그에 반대한 천체학자 갈릴레오를 종신형에 처한다. 그러나 실증할 수 없는 주장을 고집하면서, 그에 반대하는 이들을 감옥에 처넣어도 실제 현실은 바뀌지 않는다. 교회는 갈릴레오를 수감시킴으로서 이단자들의 입을 다물게 할 수는 있었을지 몰라도,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돈다는 사실을 바꾸지는 못했다. 다시 말해, 무언가를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현실로 만들 수 없다는 뜻이다. 

한 여자가 자기가 '여자가 아니'라고 선언한다고 해서 본인이 여자라는 실제 현실이 바뀌지도 않는다. 누구든 본인이 하고 싶은 말을 할 자유는 있고, 글로 쓸 자유도, 마음 가는 대로 영어나 기타 언어체계를 뒤섞어놓을 자유도 있다. 그래도 선언으로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머리스타일을 바꾸고, 호르몬 주사를 맞고, 각종 수술을 하고, 이름을 바꾸고, 자신을 "they/them(3인칭의 성별 중립적인 단수형 대명사)"으로 부르라고 요구해도 여성이라는 성별을 바꿀 수 없다. 이는 예외가 없는 사실이다.

데미 로바토의 지난주 공개선언은 개인적으로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악마와 함께 춤을(Dancing with the Devil)"이라는 데미의 다큐멘터리 시리즈 첫 번째 에피소드를 지난 3월에 봤기 때문이다. 여기 유튜브에서도 이 시리즈에 대한 광고가 많이 나왔었는데 나는 진심으로 데미의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나는 내 단짝친구가 헤로인 중독으로 명을 달리했던 경험이 있고, 나도 개인적으로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고 있다(물론 안 그런 사람이 어딨겠냐만). 그래서 데미의 약물 중독이라든가 다른 고난과 역경에 자연스럽게 끌렸던 것 같다. 내가 첫 번째 에피소드를 시청하면서 깜짝 놀라 멈춘 순간들이 몇 번 있었는데, 데미가 진정한 '깨달음'에 도달할 뻔한 느낌을 받아서다. 본인의 세계를 마침내 여성주의적인 관점에서 볼 것처럼 하다가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실패하는 비극적인 순간들이었다. 데미가 직접 이야기하는 모습을 통해 확인해보자.

 

("악마와 함께 춤을(Dancing with the Devil)" 중 일부)
그렇게 저는 어렸을 때부터 청소년 미인대회 무대에 올라야 했고, 그러한 냉혹한 경쟁 속에서 제 자존감은 큰 상처를 입었습니다. -- 제 개인 매니저팀은 비서랑 건강 코치, 식단 관리사, 영양사들로 이루어져 있어요. -- 제가 제 자신을 위한 결정을 내리는 게 아니라 남이 시키는 대로 하고 있는 느낌이예요. -- 지금 제 몸이 편하다는 느낌이 없어요. 좀 마음의 평온을 얻으려고 음식 조절을 엄격하게 안 하기 시작했는데 살이 조금 찌기 시작하니깐, 매일 밤 무대에 나서기도, 몸이 드러나는 무대 의상을 입기도 싫어져요. 그냥 이 업계에서 여자들의 외모와 몸매가 어때야 한다거나,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는 식의 압박이 너무 강해요. -- 저는 제가 어떤 완벽한 역할 모델이 되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이 업계에서 여자들의 외모와 몸매가 어때야 한다거나, 어떤 옷을 입어야 한다는 식의 압박이 너무 강해요." 앞의 영상들에서 내가 읽어낼 수 있는 것은, 데미 자신이 문제라는 생각이다. 여자들이나 여성 청소년들에게 비현실적인 외모 기준을 충족하고 유지하라는 구조적인 압력을 가하는 연예 산업이 문제가 아니고, 그러한 말도 안 되는 기준을 충족시킬 수 없었던 자신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첫 에피소드의 제목인 "Losing Control(통제를 잃다)"은 데미가 이 구조에 완벽하게 자신을 끼워맞춰야 하는 부담을 지고 있으며, 그 부담을 회피하는 것은 여자로 태어난 본인의 의무를 져버렸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진실은, 데미가 애초에 자신의 상황에 대해 통제권이 없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해두고 넘어가자. 데미에게는 문제가 없다. 어떤 여성이 이러한 비현실적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비현실적인 기준이 문제다. 구조가 문제다. 더욱 심해져가는 성차별주의가 문제다. 여자가 된다는 것이 구체적인 '어떤 것'이 되는 것을 의미하며 그 '어떤 것'의 범위는 날마다 좁아져 간다. 내가 '어떤 것'이라는 단어를 괜히 쓴 것이 아니다. 왜냐면 데미 같은 여성들은 다른 이들의 유희와 쾌락에 이용되는 객체로 여겨지며, 자신의 운명을 좌지우지하는 주체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역할은 점점 더 좁아져가고 있고, 이 좁혀드는 흐름에 답답함을 느끼는 여성들이 절실하게 탈출구를 찾고 있다. 이러한 제약, 여자로 태어난 이상 굉장히 구체적인 딱 한 가지의 것만 될 수 있으며, 다른 선택지는 없다고 말하는 구조로부터의 압박을 조금이라도 느슨하게 할 무언가가 탈출구 바깥에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데미의 이야기에는 언급하고 지나가고 싶은 다른 측면이 있다. 데미는 특정한 외모 기준에 맞추기 위해 큰 스트레스와 식이장애까지 겪은 것뿐 아니라, 성폭행 피해자이기도 했으며,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마약상에 의해 성적으로 이용당하고 생명이 위독한 상태에서 방치되었었다는 사실이다. 어떠한 종류의 트라우마를 겪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탓하거나, 자기 자신의 특징을 곱씹으면서 '내가 이러이러하지 않았다면 그 일이 나에게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래서 아마도 내 추측에 불과하지만, 이러한 트라우마들이 데미로 하여금 '내가 여자가 아니라면 이런 부당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에 도달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만약 그게 데미의 의중이라면, 아마 일리가 있는 말일 수도 있다. 여자들이 미적 기준과 성범죄에 훨씬 많이 시달린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따라서 통계학적으로 따지자면, 데미가 여자가 아니었을 경우 데미에게 그 모든 일들이 일어날 확률은 훨씬 낮아졌을 것이다. 다만, 아무리 간절히 바라더라도 현실세계에서 여성됨을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존재하지 않는다. 데미가 지금도 앞으로도 죽음에 이르는 그 순간까지 여성으로 살아갈 것이라는 물리적인 현실을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것은 데미나 다른 여성들이 사회가 그들에게 짊어지우는 협소한 역할이나 요구를 충실히 이행하라는 말과는 다르다. 그런 요구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여성됨의 의미를 넓히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여 여성들이 여성됨을 탈출한다는 불가능한 일에 목을 매지 않고 자신들의 모습 그대로에 편안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여성들을 성적대상화하고 도구화하는 구조에서 비롯되는 불편함을 완화하여야 한다. 여성들에게 특정한 역할을 수행할 것을 요구하고, 그것을 거부하면 너는 여자도 아닌 무언가라고 말하는 구조 말이다. 개인주의적인 깨시민 문화는 여성됨이 무슨 상사가 맘에 안 들면 사직서 내고 때려칠 수 있는 직장인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대신에 노동조합을 만들고 여성됨을 정의하는 규칙에 반기를 들어야 한다. 기왕이면, 아예 다 없애버리는 것도 좋겠다. 우리가 살고 있는 문화는 급격하게 여성들에게 해로운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20년 전에는, 성적인 대상화라는 것이 이 정도였다(브리트니 스피어스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물론 성적 대상화가 맞긴 하고, 이게 무해하고 순수하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지금의 성적 대상화는 이런 모습이다(카디비와 메건 디 스탤리언의 공연 장면). 황금시간대에 전국구 방송사에서 송출하는 그래미 시상식인데도 스트리퍼 봉이 등장하고, 끈팬티를 입은 여성들이 다리를 벌리는가 하면 침대 위에서 온몸을 베베 꼰다. 이건 해방이 아니다. 임파워링도 아니다. 이건 착취이고, 치욕적인 일이며, 기존보다 한층 강화된 성적 대상화이다. 이는 여성들, 특히 젊은 여성들과 여성청소년, 데미 로바토 같은 사람들에게 여성됨이라는 말이 의미는 바로 이런 것이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암울하기 그지없다. 포르노 문화는 폭발적으로 성장해 주류 문화에까지 독성 폐기물처럼 스며들어서 여성들이 여성됨에서 탈출하고 싶게 만들고 있다.

남자들은 이런 메시지를 받지 않는다. 메시지의 수신자는 여자들뿐이다. 남자들은 자신들이 아름다움과 쾌락의 대상이며, 남자들의 궁극적인 역할도 그것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식의 메시지에 노출되지 않는다. 딱 달라붙는 요가바지를 입은 남자 엉덩이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도배되지도 않는다. 18세가 되는 날에 맞춰서 온리팬즈에 가입하여 노출을 하지도 않는다. 립필러와 성형수술 광고의 주 타겟층도 남자가 아니다. 이것이 현재 자라나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 살아가고 있는 암울한 현실이며, 이 여성들에게는 유일한 현실이다. 평생 접한 게 이런 것들뿐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만약 당신이 오직 이런 메시지들에만 노출되어 다른 가능성과 잠재력은 접해보지 못했다면, 당신이라도 여성됨에서 탈출하고 싶지 않겠나.

여성들의 신체에 대한 대상화는 연예계나 소셜미디어에 국한되지 않는다. 사회의 모든 층위에 만연해있다. 지난주에 플로리다의 한 공림고등학교에서는 여학생 80명의 사진이 포토샵으로 수정되어 마치 이 청소년들의 몸에 부적절하거나 잘못된 부분이라도 있다는 식의 메시지로 해석되었다. 남학생들의 사진도 그렇게 수정되었을까? 아니. 그런 행위가 여학생들에게 부끄러움과 불안감을 유발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의 정체성에 의문을 가지게 만들었을 가능성은? 여학생들도 "이 일은 내가 남자였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거야"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탈출구를 찾고 싶어지지 않을까? 우리의 포스트모더니즘적인사회가 마치 여성에게 가해지는 괴롭힘과 강요에서 해방될 수 있는 탈출구가 존재하는 것처럼 제시한다면, 여학생들이 탈출구를 통해 나가려고 하지 않을까? 만약에 여학생들이 정말로 그렇게 한다면, 무슨 대가를 치르게 되는 것이지? 탐사프로그램 "60분"에서 이번 달에 탈성전환자(detransitioner), 즉 한번 현실을 거부하고 자신의 성별과 자신을 분리하는 시도를 했던 사람들에 대한 내용을 방영했는데, 나는 그중에 한 젊은 여성의 증언에 특히 귀를 기울이게 되었다. 

 

("60분" 방영분 중 일부)
20대 초반의 나이에, 그레이스 렌딘스키 스미스씨는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렸으며 젠더디스포리아도 겪었다. "혹시 '남자들 인생이 더 쉬워보인다, 남자로 살면 내 삶이 더 쉬워질 거 같다'는 생각이 영향을 조금이라도 끼쳤나요?" "네, 전 그냥 트랜스남성이나 남성으로 살 수 있으면 남의 시선을 지나치게 의식하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살 수 있을 것 같았어요." --- "저에게 '왜 테스토스테론을 처방받고 싶은 거냐'고 물었을 때 저는 '여성으로 사는 게 저랑은 더 이상 잘 안 맞는 거 같아요'라고 했죠."

남자들 인생이 진짜로 더 쉬울까? 뭐 격렬한 논쟁을 부를 만한 주제기는 하지만, 내가 어느 편에 설지는 아마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거다. 다만 남자들의 삶이 더 쉽든 어렵든 간에, 확실한 건 남자들은 여성혐오를 경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경험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그래서 젊은 여성들이 여성혐오로 인한 경험을 부당하게 짊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다가 여성됨에서 해방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하는 이 거대한 유행, 현실을 부정하는 환각적인 체험이 여성들에게는 바로 그러한 기회로 여겨지는 것이고 말이다. 한쪽에는 여성이 성적물화, 대상화되는 사회에서 여성으로서 사는 "선택지"가 있고, 다른 쪽에는 여성됨을 완전히 거부할 수 있는 "선택지"가 주어진다. 문제는 이것이 현실과 동떨어져서 선택이 불가능한 선택지라는 점이다. 사실은 사실이고, 사실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짚어야 하는 점은, 어떤 사실들은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다. 어떤 사실은 변할 수도 있는 반면에, 그렇지 않은 사실들도 있다. 여성됨은 변하지 않는 사실이다. 그런데 여성이 성적대상화된다는 사실, 여성 6명 중 1명은 살면서 한 번은 성폭행을 당한다는 사실, 성희롱이 너무나 만연해있다는 사실, 이러한 사실들은 실제로 우리가 바꾸고자 한다면 바꿀 수도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대신에 우리는 여자들이 여자인 게 싫으면 안 해도 된다는 식의 헛소리를 해대면서 바꿀 수 없는 사실을 바꾸려고 하고 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가 실제로 바꿀 수 있는 사실들, 여성들의 삶에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들은 애써 무시하고 있다. 

성별을 바꾼다는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게 여성혐오를 줄이는 일보다 쉬운 것처럼 보일 정도이니, 말 다 했다. 그리고 소위 "논바이너리"라고 하는 탈출구는 논바이너리를 자청하지 않는 여자들은 자신들의 한계를 제한하는 고정관념들과 고통, 불편함을 군말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메시지를 암시하기도 한다. 논바이너리들은 성차별에 반기를 드는 게 아니고, 성차별의식을 강화하며 그저 다른 방식으로 성차별에 순응하는 것이다. 여성들에게 이 상자가 안 맞으면 저 상자에 들어가라고 할 게 아니라, 상자에 집어넣기를 그만두자. 우리는 여성들을 위해서 세상을 바꿀 힘이 있다. 첫 걸음은 현실을 일단 인정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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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롭게 출처 없이 퍼가세요.

 

 

 

 

Posted by 쟁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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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재밌는 거

기타 2022. 9. 13. 03:25

# Delish라는 음식 소개 채널이 재미있었다.

Hearst Communications 그룹에 속한 수 많은 잡지사 중에 하나인 Delish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데 아무래도 시대가 시대이다보니 잡지나 공식홈페이지보다는 유튜브 컨텐츠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걸로 보인다? Iconic Eats의 한 에피소드를 우연히 보게 된 후에 관련 동영상으로 잡힌 몇 가지 시리즈를 봤는데 다 재미있었다. 딱 그 Broad City나 Search Party 같은 뉴욕 젊은이들의 감성과 유우머가 느껴진다.

 

- Iconic Eats(상징적인 먹거리)

  Tess Koman이라는 유대인 여성분이 미국 전역의 놀이공원, 테마파크 등을 돌아다니면서 놀이공원에서 파는 각종 음식을 맛보고 평가하는 시리즈이다. 굉장히 냉소적인 유머를 구사하시기 때문에 놀이공원 별로 안 좋아할 거 같고(나도 그렇다만) 뜨거운 햇볕에 고통받으시는데도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꾸역꾸역 먹고 최대한 성심성의껏 맛 평가를 하시는 게 묘한 재미와 중독성이 있다. 말은 을매나 빠르신지 비유를 하자면 키보드 타자 1200타를 드르르륵 치는 느낌. 그런데 알아듣기는 쉬움. 카메라감독 Chelsea님이랑 티격태격 주고 받는 장난과 농담도 좋고, 첼시님이 놀이기구를 타라고 시키면 존나 씨부렁대면서 타는 게 웃기다. 물론 엄청 격한 놀이기구는 안 타시지만.

Ultimate Animal Kingdom Food Challenge: Trying ALL Of The Disney World Treats - YouTube

Ultimate Universal Halloween Horror Nights Food Challenge: Trying All Of The Frightful Treats

햇볕은 없는 대신 카메라로 뭘 찍고 있는 걸 보고 개나소나 달려들어 놀래키려고 해서 고통받으시는 ㅋㅋ 에피다...

 

- Julia Tries Everything(줄리아가 모든 걸 다 먹어 본다)

  Julia라는 분이 미국의 유명한 프랜차이즈 식당을 돌아다니며 유명한 메뉴를 전부 다 시켜서 맛을 보는 시리즈이다. 아 저런 걸 먹고 마시는구나 하는 신기함도 느끼고 아무래도 프랜차이즈는 전세계 여러 곳에 퍼져있고 어딜 가나 비슷한 메뉴의 비슷한 맛을 보장하는 편이기 때문에 식당 선택과 메뉴 선택에 가장 도움이 될 법한 시리즈이기도 하다. 짤막하게 프랜차이즈의 창립 과정이라든가 역사 등을 알려주시기도 한다.

  이분은 그냥저냥 되게 무난~하신 성격과 언행 스타일을 가지고 계시다. 나는 음식 먹기를 별로 안 즐기고 음식 먹기를 귀찮아하는 사람이라서 그런가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음식에 대한 진지한 사랑 이런 것이 별로 와닿지 않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그래도 맛 표현을 되게 잘 해주시는 것 같긴 하다.

  근데 내가 그런 에피만 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미국에서 서민들이 많이 찾을 이러한 프랜차이즈 음식들을 전체적으로 보면 미국이 세계에서 비만 인구가 제일 많은 데에는 미국 외식업체의 공도 적지 않은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국 음식에 환멸을 느낄 때도 있지만 맵고 짠 거, 나트륨 국물만 좀 줄이면 그래도 나쁘지 않은 편인지도...?

Trying ALL Of The Most Popular Menu Items At Outback Steakhouse

아웃백 스테이크하우스 에피소드. 아웃백은 사람이 잘 안 사는 호주 대륙의 내지를 가리키며, 미국에서 호주를 테마로 해서 만든 프랜차이즈라고 한다. 근데 아웃백 창립될 때 창립자들은 호주에 가본 적도 없었다고 한다.

Trying 35 Of The Most Popular Dishes From The Dave & Buster's Menu | Delish

  내 기억과 영상에 달린 댓글들로 미루어볼 때 코로나 아웃브레이크 이후에 처음으로 식당에 나가서 촬영한 에피소드이다. 아마 내 완전한 뇌피셜로 미루어볼 때 넷플릭스 등이 코로나 때 존나 호황을 맞은 것처럼 유튜브도 엄청난 조회수 증가가 있었을 것이고, 쉽게 나가서 먹고 놀지 못하던 사람들에게 대리만족을 줄 수 있는 Iconic Eats(놀이공원 가서 돌아다니면서 음식 먹는!)라든가 Julia Tries Everything(각종 프랜차이즈 식당에 가서 모든 메뉴를 다 먹어보는!) 등의 시리즈들은 특히나 조회수가 폭발했을 것이며, 그래서 아마 내 관련 동영상 목록에도 걸려들어서 내 눈에 띄게 된 거 같다.

  근데 코로나로 인해서 원래 포맷대로 영상을 제작하지는 못하고 Tess님은 집에서 놀이공원 음식을 만들어 본다거나, 유대인으로서 유대인 전통 음식을 유대인 엄마의 원격 지원을 받아 만드는 Slightly Kosher라는 시리즈를 새로 만든다거나 했고, Julia님은 집에서 음식을 무더기로 시켜서 맛을 보는 식으로 대처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원래 포맷의 영상보다 만족감이 덜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컨텐츠 갈증이 좀 길었던 거 같다.

  결국 지금 보니 Tess님은 Iconic Eats 시리즈를 하차하고 다른 분에게 넘긴 거 같고, Julia Eats Everything은 이번 시즌을 마지막으로 끝이라고 하니 코로나 기간이 이분들에게는 많은 시청자들을 가져다주기도 했겠지만은 그렇게 들어오는 물에 노를 저을 수도 없는 답답함이 되게 컸을 것 같다.

 

- Budget Eats(가성비로 해먹기)

  이거는 중국계 미국인? June Xie라는 셰프 분이 예산을 아주 작게 잡고, 자기 동네인 뉴욕 브루클린에서 장을 본 후에, 미국 기준으로 아주 평범해 보이는 자기 집 주방에서 몇 안 되는 조리기구로 뚝딱뚝딱 여러 음식을 만드는 것을 보여주는 시리즈이다. 다만 미국에서 평범한 식재료나 조리기구 등도 우리나라 사정과는 좀 괴리가 있고(오븐...이 집에 있긴 한데 귀찮), 괴기 가격도 우리랑 비교했을 때 훨씬 싸다는 차이 등이 괴리감을 만들어 실제로 따라해볼 만하다는 생각이 드는 레시피는 많지 않다.

  그래도 중국 일본 한국의 식재료(간장이나 June님 남친이 매운 거 좋아해서 존나 뿌려대는 고춧가루 ㅋㅋㅋㅋ)도 자주 등장해서 다른 서양 음식 레시피들보다는 친숙하긴 하다. 촬영방법은 사실 예전 Budget Eats 에피를 보면 쥰님 얼굴에 개 미친 클로즈업을 때려서 굉장히 부담스러웠는데, 최근 에피로 올수록 그게 좀 덜해져서 보기에 훨 낫다. 굉장히 성격이 재미있으시고 말주변이 뛰어나시다. 긍정파워로 실패도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창의력을 발휘하시고 문제를 해결해나가시는 모습도 볼 만하다.

 Made 10 Low FODMAP Diet Meals For 2 People On A $25 Budget | Budget Eats | Delish

FODMAP은 또 뭔 지롤이냐라고 할라고 보니 소화에 문제 있는 사람들을 위한 음식 종류를 일컫는 약자라고 한다. 여자들 죄책감 자극해서 여자들의 돈과 노동력을 빨아먹는 해로운 동물권 지랄이나 비건 지랄하고 비슷한 줄 알고 살짝 짜증이 났다가 뻘쭘하게 됨. 물론 비건 에피소드도 있다 ^^. 아무턴 이런 또 다른 규칙과 제한을 더했을 때 생기는 문제들에는 어떻게 대처하시는지를 보는 재미가 또 쏠쏠하다. 

I Ate As Many Different Meals As I Could On A $50 Budget In Queens, NYC | Budget Eats | Delish - YouTube

위에 달아놓은 설명이 보통의 budget eats인데, 최근 에피소드에서 쥰님도 드디어 본인 주방을 벗어나 한정된 예산으로 본인이 사는 Brooklyn에서 음식을 알뜰하게 사먹는 방법을 선보이셨다. 시끄러운 전철이 어딜 가나 촬영팀을 맞이 하는 것이 웃기다. 개인적으로는 따라 만들지 않을 음식 만들기 영상보다는 이런 게 훨씬 흥미롭긴 하다. 약간 옛날에 무한도전이 여기저기 돌아다니던 거 재밌게 봤던 느낌이랄지.

 

 

# ChooChoo's Story

  추추라는 한국인 분이 캐나다의 호숫가에 사시면서 야생동물들에게 먹이를 주거나 하면서 교감하는 모습을 화면에 담아 공유하시는 유튜브 채널이다. 주로 다람쥐가 많이 등장하고, 이따금씩 블루제이라는 파랑새, 사슴, 청설모 등도 등장한다. 물론 영상에 바로 입힌 한국말 영어 자막이 CC였으면 어땠을까 하는 바람이 있으나 아마 조회수가 더 잘 나오니까 그렇게 하시는 걸로 생각이 된다. 다람쥐들은 겨울잠을 자기 때문에 겨우내 우리 예쁜 다람쥐새끼덜 은제 돌아오냐 돌아오기는 허냐 돌아오면 그때 올란다 하는 애탄 기다림을 구독자들이 공유한다는 점이 재미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추추님과 교감한 다람쥐이면서 중간에 입가에 큰 상처를 입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낸 후에도 꿋꿋한 생명력으로 회복을 하고 또 새끼도 까고 하면서 이제는 불굴의 아이콘이 된 것 같은 사랑스러운 쳐키. 일련의 쳐키 영상들을 시간순으로 모아서 보여주시는 영상이다. 만약 이걸 보고도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면 당신은 냉혈한일 것이다. 쳐키는 그리고 추추 님 마당으로 오는 다람쥐 중 유일하게 집안까지 들어오는 녀석이다.

집에 들어와 낮잠을 청하는 쳐키.

배경음악도 거의 없이 쳐키가 추추님 집에서 조는 모습을 오래 볼 수 있는 영상이다. 나는 이런 영상이 더 좋은데 물론 조회수 안 나와서 이런 식으로 업로드를 잘 안 하실 건 안다 ㅎ.

멀뚱대는 아기사슴이 너무 귀여워!!

아기사슴들 귀엽다.

 

 

 

# FrtingGlitter

  스트리머계에 Vtuber라고 하여서 자신의 실제 얼굴 표정과 머리 움직임 등을 인식하고 애니메이션 캐릭터에 대입시켜서 실시간으로 움직이게 하는 그런 기술이 있는데, 특히 여스트리머들이 얼굴 화상과 목소리를 동시에 송출하는 선택지와 목소리만 송출하는 선택지 사이의 타협안으로 사용하곤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근데 나는 씹덕애니그림체에 경미한 알러지가 있기 때문에 Vtuber 쓰는 사람을 뭐 일부러 찾아서 보고 그러지는 않았다. 멀쩡히 얼굴 까고 방송하던 스트리머들이 인제 페이스캠 켜고 방송하는 게 부담스럽고 지치는 일이기 때문에 좀 더 편하게 방송할 때 사용하는 경우가 있어서 의도치 않게 오며가며 좀 보기는 했던 거 같다. 

 그리고 인제 SnapChat이라는 젊은이들이 많이 쓰는 사진어플/소셜미디어 어플에서 만든 각종 희한한 필터들을 보면은 기본적으로 Vtuber랑 비슷한 기술인데 이거는 감자 같은 사물에 본인의 눈과 입만 실시간으로 인식해서 합성한다든지 하는 다양한 필터들이 있어서 그것도 역시 Vtuber처럼 실시간 방송에서도 써먹을 수 있다는 거 같다.

 

 틱톡이라는 짤막한 동영상 플랫폼에 자신의 게임 방송 하이라이트를 올리는 틱톡커들 사이에서 특별히 "감자"에 자신의 눈과 입을 박아넣고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스냅챗 필터가 유행을 탄 모양이고, 그 중에서도 인제 내가 드디어 소개할 FrtingGlitter(이름은 Tina)라는 베트남계의 미국인 여자 스트리머가 재미있는 입담과 순발력과 호탕한 웃음소리 등으로 감자스트리머계에 혜성처럼 등장해 명성을 구가하고 있다라는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실시간 방송은 틱톡하이라이트만큼 재밌지는 않았고 좀 분위기가 처지는 느낌이 많이 났다. 그리고 Joji라는 가수의 Glimpse of Us라는 노래를 진짜 틈날 때마다 무한반복으로 흥얼거리는데 처음 한두 번이야 듣기가 좋지 계속되니까 내가 정신병이 걸릴 거 같아서 생방 시청은 그만뒀다.

 그러나 어쨌든 틱톡은 짧고 재밌는 편이고 내가 별로 안 보는 발로란트라는 게임커뮤니티의 분위기, 내가 잘 모르는 Tina의 스트리머 친구들, 내가 잘 모르는 유행어, 내가 잘 모르는 TV쇼 등등이 다뤄지기 때문에 흥미롭게 보고 있다. 

I FOUND MY SOULMATE IN VALORANT

발로란트에서 우결을 찍고 계시는 영상이다. 굉장히 웃기고 흐뭇해진다. 

 

 

 

# 펩시티

  펩바르샤 때문에 축구 보기 시작했다가 펩이 바르샤를 나가고 주요 선수들이 늙어서 이적하거나 은퇴한 후에도 메시만 계속 의리로 남아 홀로 고통받는 모습을 보면서 슬슬 바르셀로나에 대한 팬심은 줄었고 펩시티에 눈길이 갔다. 그러고 보니 내가 좋아했던 바르셀로나식 축구는 맨시티가 하고 있었다. 다만 중요한 고비에서 제주스 스털링 같은 최전방 선수들의 마무리 능력이 약하다는 느낌.

역천괴가 프리미어리그를 찢는 법|엘링 홀란드 22/23 시즌 활약상 - YouTube
https://www.youtube.com/watch?v=eHLoGpklFtY

  을 더 없이 강렬한 인상(빻았는데 무섭게 빻음)의 9척 장신 공격수를 데려와서 없애버렸다. 보통 이렇게 덩치가 크면 몸싸움은 좋을지 몰라도 움직임은 좀 느리거나 둔하게 마련인데, 얘는 강하면서 빠르고 유연하기까지 해서 게임에서 생성한 선수 같다는 느낌. 부상 공백 없으면 펩이 바르셀로나 밖에서 처음으로 유럽 챔피언이 되는 데 일등공신이 될지도.

 

- 그외 시티 스쿼드 단상

 김덕배: 전진드리블 능력이라든지 미친듯한 킥력 때문에 한 번 크로스를 성공시켜서 득점으로 이어질 때는 엄청나지만 90분 경기력은 이새끼가 뭐하자는 건가 싶을 때가 자주 있다. 그래도 펩바르샤랑 달리 라포르테 후뱅 디아스 존 스톤스 주앙 칸셀루 로드리 거기에 홀란드까지 큰 평균 신장을 자랑하는 맨시티에서 날카로운 크로스 공격은 필수이기 때문에 쉽게 대체할 수 없는 무기를 가진 선수임에는 틀림이 없다.

 필포든: 어린 선수인데 진짜 재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엄청나게 민첩하고 빠르면서 간결하고 문전 앞에서 위협적인 모습이 좋다.

 귄도안: 신체능력은 피크에서 내려왔지만 시야가 넓고 판단력이 뛰어나다. 안전하게 할 때 안전하고 과감해야 할 때 과감하기 때문에 중요한 상황에서 균형을 깨는 선수다. 

 베르나르도 실바: 바르셀로나 갈까말까 하는 얘기가 나오니까 귀신 같이 이새끼 거품이라고 필요 없다고 후려치고 욕하는 일부 한국(남성) 맨시티 서포터들 보고 어이가 없었다. 뛰어난 볼키핑 드리블 능력과 패스 능력에 쉬지 않고 뛰면서 상대의 실수를 유도해내는 압박 능력, 간간히 보여주는 클러치 능력까지 다비드 실바가 없는 현 맨시티에서는 제일 요긴한 미드필드 자원이라고 생각한다. 90분 경기력이 들쭉날쭉한 덕배는 맨시티 특유의 패스게임을 이끄는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로드리: 안정감 있게 수비를 잘 하고 롱패스를 잘 뿌려준다. 근데 항상 칸셀루랑 헷갈려서 명확히 로드리가 잘 한 건지 칸셀루가 잘 한 건지 제대로 인지를 못하겠다. 수비적인 안정감에 방점이 찍히며 예전 부스케츠처럼 아주 날카로운 전진패스나 탈압박을 자주 보여주는 선수 같지는 않다.

 칸셀루: 휙휙 접어대면서 슛이나 크로스를 쏘는데 아주 날카롭다. 근데 로드리나 칸셀루 둘 중에 한 명이 머리 염색이라도 해서 구분을 쉽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후뱅 디아스: 코가 무지막지하게 크고 잘생김. 안정적임.

 존 스톤스: 애는 그냥 호감인데 부상을 자주 당함.

 네이선 아케: 준수함. 안정적임.

 카일 워커: 필드플레이어들이 죄다 올라가서 공격하는 맨시티 특성 상 워커의 빠른 발 수비 복귀는 필수적이다. 존나 친화력이 높아보이고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선수라고도 함.

 

Posted by 쟁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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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sCc5RPekftM

영상 원제: "Trans Medicine": The New Lobotomy

영상 채널: 리사 미셸 님의 유튜브 채널 (https://www.youtube.com/c/LisaMichele/videos)

 

 한때 열광적인 반응을 이끌었다가 그 실체가 탄로 나 사장된 전두엽 절제술(lobotomy) 열풍을, 현재의 트랜스젠더 의술 열풍과 여러 측면에서 비교한 후, 공통되는 패턴을 집어내고, 궁극적으로는 현행 트랜스젠더 의술 열풍에 반대하는 의견을 표명하는 유튜브 영상이다. 영상이 길면서도 매우 조리 있고, 새로 알게 된 사실들도 많이 배우게 되어서(+감사하게도 영문 자막을 첨부해두셔서) 굳이 번역을 하게 되었다. 의학 분야는 문외한이다 보니 적절한 우리말 단어를 찾지 못해 대충 때운 부분도 있다. 그래도 내용 이해에는 문제가 없을 거라고 생각한다. 꼬우면... 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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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역사란 뼈를 깎는 고통을 느끼게 하지만, 일어나지 않았던 일로 만들 수 없다. 다만 용기를 가지고 역사를 마주 본다면, 또 다시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 마야 앤젤루.

 

 안녕하십니까. 제 이름은 리사 미셸이라고 합니다. 이 영상에서 우리는 미국 역사에서 가장 큰 의학 스캔들 중에 하나인 '전두엽 절제술'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그리고 전두엽 절제술이 점점 성장하고 있는 "트랜스젠더 의술"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살펴볼 것입니다. 역사가 반복되고 있는 걸까요? 함께 확인해봅시다.

 

 

전두엽 절제술 개괄

 1940년대부터 1960년대까지, 50,000여 명의 미국인들이 '전두엽 절제술'라고 알려진 잔인한 "치료"를 당했다. 당시에는 이 수술이 고통받는 이들에게 안식을 줄 수 있는 혁신적인 의료 행위로 여겨졌다. 전두엽 절제술을 발명한 포르투갈의 에가스 모니스는 노벨 의학상을 받기까지 했다. 그러나 한때는 기적의 치유법이라고 여겨졌던 이 수술은, 시간이 지나면서 어리석은 짓이었음이 드러났다. 전두엽 절제술은 제대로 된 연구도 선행되지 않은 채로, 많은 경우 동의 능력이 없는 피해자들에게 광범위하게 행해진 의료사고였다. 미국에서는 의사 월터 프리먼이 가장 강력하게 전두엽 절제술을 전파했으며, 이 과대망상증을 앓던 신경과 의사는 직접 5,000여 명에 달하는 환자들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술했다. 그는 한때 "로보토모빌"을 타고 미국을 누비면서, 같은 날에만 25번의 전두엽 절제술을 행하여 그중 복수의 환자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기도 했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이 사건을 신중하게 분석할 여유가 있으므로, 지금부터 그 비극적인 양태를 낱낱이 확인해볼 것이다.

 

 

반복되는 역사: 젠더 불쾌감

 과거를 반추할 때는, 현재에도 눈을 돌려 비슷한 일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50,000여 명의 미국인들이 전두엽 절제술을 받게 된 경위를 보면, 현재 이뤄지고 있는 의료 행위와 많은 공통점을 본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젠더" 치료가 그것이다. 여기에서는 주로 아이들에게 초점을 맞출 것이지만, 대부분은 성인들에게도 적용이 되는 이야기다. 그런 맥락에서 말을 잇자면, 어느 때보다 많은 수의 아이들이 "젠더 불쾌감"이라는 질환으로 의학적인 치료를 받고 있다.

 

 젠더 불쾌감의 특정 사례는 젠더 불쾌감보다는 "신체 불쾌감"에 더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이는 자신의 몸에 대한 극도의 불만족감을 가리키며, 거식증 같은 장애와 연관이 있다. 이 "신체 불쾌감"은 거의 모든 성장기 청소년들이 사춘기에 급변하는 신체에서 느끼는 불편감을 남들보다 더 강하게 느끼는 것에 불과한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사례에서는, "젠더 불쾌감"이라는 말이 정신이나 영혼에 젠더가 존재하며, 그것이 생물학적인 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형이상학적인 믿음을 상징하기도 한다.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스스로 "잘못된 몸에 태어났다"라고 말하는 것을 들어봤을 것이다.

 

 그것들과 또 다른 사례에서, "젠더 불쾌감"은 아이들이 자신의 성별이 아닌 반대 성별과 고정관념으로 이어져있는 특정 장난감이나 옷, 머리 스타일에 대한 선호를 가짐으로써 생기기도 한다. 그러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남자아이도 드레스를 입고 인형놀이를 해도 된다고, 여자아이도 머리를 짧게 하고 트럭 장난감을 갖고 놀아도 된다고 말해주지는 못할망정, 의료인들은 "젠더 비순응적" 아이들의 행동을 병적인 증상으로 취급하며, 결과적으로 성별 고정관념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소위 "젠더 치료" 유행에 대해 조사하다보면, 20세기 중반의 전두엽 절제술 유행 시대와 비슷한 요소를 감지할 수 있다. 우리가 그 이야기들을 직접 들으면서 그것들을 골라낼 수 있을까? 지금부터는 전두엽 절제술과 젠더 의료 두 가지의 공통점을 열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것이다.

 

 

1장: 유사과학적 망상

 전두엽 절제술에는 류코톰이나 오비토클라스트라고 불리는 날카로운 금속 물체를 뇌의 앞쪽에 삽입하는 과정이 수반되는데, 보통 두개골에 작은 구멍을 뚫거나 눈물길을 통하는 방법을 사용한다(소위 안와경유엽절개-"얼음송곳 수술"). 시술자는 기구를 삽입한 후에 마음대로 속을 휘저어서 예민한 신경을 영구적으로 절단시키는가 하면, 무차별적으로 뇌세포를 파괴한다. 실로 섬세함이 결여된 야만적인 수술이다. 전두엽 절제술은 소수의 남자들이 유사과학적인 망상에 매몰된 끝에 도출해냈으며, 정신병 환자들의 두뇌가 비정상적인 모양으로 형성되었다는 잘못된 전제에서 비롯되었다. 뇌세포를 고의로 파괴하여, 두뇌의 특정 부위가 다른 부위와 통신하는 것을 막는 것이 목적이었던 수술이다.

 

 이성을 가진 사람이 보면 이 수술은 말도 안 되는 짓이다. 두뇌는 대단히 복잡다단한 기관이다. 또한 우리는 인체의 생리(physiology)와 심리(psychology)가 우리가 다 알 수 없는 신비로운 방식으로 상호작용한다는 것을 안다. 조현병이나 우울증이 두뇌를 절제함으로써 치료될 거라고 무턱대고 믿는 것은 몽상에 불과하다. 성호르몬 치료에 대한 문헌에서도 이와 비슷한 비논리 및 기초 생리학을 부정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일례로, 메이요 클리닉(Mayo Clinic)에서 "여성화" 및 "남성화 성호르몬 치료"에 대해 설명해놓은 것을 보자. 두 글 모두 다음과 같은 비논리를 담고 있다:

 

 "청소년기에 성호르몬 치료가 진행되는 경우, 보통 16세 연령에 시작된다. 이상적인 치료 시기는 이차성징이 시작되기 전이며, 그럴 경우엔 본인이 원하는 젠더로서 사춘기를 보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망상과는 거리가 멀다. 그 누구도 자기가 원하는 성별의 사춘기를 선택하거나 바꿀 수 없다. 여성은 특정 질병에 영향을 받지 않는 이상 여성 사춘기를 보낼 것이고, 남성은 남성 사춘기를 보낼 것이다.

 

 

2장: 의도적인 상해

 "여성화 성호르몬 치료"라 함은, 남성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자연적인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합성 에스트로젠과 테스토스테론 수치를 감소시키는 스피로노락톤을 함께 복용하는 것이다. 이 남성들은 "치료"를 받기 전에는, 남성성별에 적정한 성호르몬 수치를 보인다. 즉, 약물처방인은 이들에게 일부러 질병이 걸린 상태를 유도하는 것이다. 테스토스테론 수치가 낮고 에스트로겐 수치가 높은 상태는 남성들에게 질병의 징조이며, 이로 인해 나타나는 신체의 변화도 마찬가지다. 얼굴에서 수염이 적어지고, 유방 세포 발달, 체지방 재분배, 근육 소모, 고환 위축, 성욕 감퇴 등이 나타난다. "남성화 성호르몬 치료"라 함은, 여성 어린이들과 어른들이 자연적인 수준을 훌쩍 뛰어넘는 테스토스테론을 복용하는 것이다. 위와 마찬가지로, 여성성별에 적합한 성호르몬 수치에서 시작해, 순식간에 질병이 걸린 상태로 도입한다. 그 증상으로는 목소리가 깊어지고, 얼굴에 수염이 생기고 몸에도 나기 시작하고, 체지방 재분배, 월경 중단, 질 위축 등이 있다.

 

 언급된 증상들은 여성의 신체에 나타날 경우 질병의 징조이다. 그런데도 이런 질환을 일부러 유도하는 이유는, 환자와 의사 모두 인간이 성별을 "말 그대로" 바꿀 수 있다는 망상--"MTF(Male to Female,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을 한 사람)"나 "FTM(Female to Male, 여성에서 남성으로 성전환을 한 사람)" 같은 용어로 강화되는--에 기초해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여자에게 얼굴에 수염이 나고 월경을 하지 않는 증상이 나타나게 되면, 그 여자가 실제로 남성으로 변하고 있다는 식의 망상에 빠지는 것이다. 보통의 남성들에게는 그것이 건강한 상태이고, 보통의 남자들은 월경도 안 하고 수염도 자라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 여성은 남성인 적이 없고, 미래에도 남성이 될 일이 없다는 것이다. 세상의 모든 소망을 다 모아도, 그 여성은 여성 신체를 유지할 것이다. 그리고 언급된 증상들은 여성 신체에서 질병의 신호일 뿐이다. 어떤 것도 그 현실을 바꿀 수는 없다.

 

 전두엽 절제술의 경우에도, 환자들은 정상적인 백질과 회백질을 가지고 수술에 임했다. 비록 환자들이 감정적인, 혹은 심리적인 문제가 있었을지라도, 뇌 자체에는 구조적인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또한 일부 조현병과 조증 환자들 같은 경우처럼, 수술의 목적 자체가 뇌에 외상성 뇌손상을 가하는 것인 경우도 있었다. 전두엽 절제술의 가장 흔한 효과로는 "무기력증"이 있었는데, 이는 외상성 뇌손상 환자에게서도 발견된다. 무기력증의 증상으로는 환자가 극도로 유순해져서 긴장증(주위의 자극에 응답하지 않고 표정이나 행동이 정지된 혼미 상태 등의 상태를 보이는 정신운동장애) 환자처럼 된다는 것이 있다. 아주 시끄럽고 난폭하던 환자들을(<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를 떠올려보라) 외상성 뇌손상을 가해 수동적이고 유순한 상태로 만드는 것, 그렇게 하여 환자를 제어 가능하고 더 조용한 상태로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3장: 어림짐작

 미국에서 시술된 50,000건의 사례들 중 첫 번째 사례는 1946년에 29세의 가정주부였으며 수술은 의사 월터 프리먼이 집도했다. 프리먼은 자신이 신이라는 착각에 빠져 있었고 자의식도 과잉이었던 인물이어서, 매우 대담히 행동했고 자신의 행동에 따르는 파급효과에도 관심이 없었다. 그는 외과의사로서 공인을 받은 적도 없다. 그러니 프리먼이 엄격한 연구와 과학적인 근거가 아닌 자신의 본능과 직관에 따라서 행동했다는 것도 그리 놀랍지는 않을 것이다. 프리먼은 전두엽 절제술을 너무 많이 시술했던 탓에, 환자들을 사후에 돌보지도 않았고, 엄격하고 과학적인 검증을 수행하지도 않았다. 내세우던 수술 효과도 대체로 경험담에 근거한 것이었다. 실패는 자명했다. 수술 도중, 혹은 받고나서 곧바로 사망한 환자는 490명으로 프리먼에게 시술받은 환자의 10퍼센트에 달했다. 그런데 성공 사례로 이야기되는 경우는 더욱 놀랍다. 일례로, 턱에 암이 생긴 여성이 고통을 줄이기 위해 전두엽 절제술을 받았는데, 그 여성은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게 되고 무신경해졌으며, 말도 거의 하지 못하여 24시간 간호가 필요한 신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공 사례로 기록되었다.

 

 프리먼이 메스를 잡은 지가 거의 백 년이 되어가는데도, 교차 성호르몬 치료에서도 과학적인 근거를 우선시하는 태도는 찾아보기 힘들다. 2021년 4월에 나온 논문 비평에서, 영국 국립보건임상연구소(NICE)는 현재의 소위 "사춘기 차단제"들에 대한 연구들에 대해서 연구 규모가 너무 작고 조악하게 설계되었고, 편향과 교란 변수의 여지가 있으며, 통제집단이 없고, 산출된 데이터도 거의 없기 때문에 결론을 도출해내기 힘들다는 평가를 내렸다. 그들은 교차 성호르몬 투여 치료 연구에 대해서도 비슷한 문제를 발견하여, 임상적인 효과와 안전성에 대한 근거 수준이 낮다고 평가했다. 이 약물들의 장기적인 안정성도 대체로 알려져 있지 않다고 덧붙였다. 2016년에 의학 저널 <신경정신과 질병과 치료>지의 논문 비평에서는 교차 성호르몬 요법이 정신건강의 여러 측면, 우울증이나 전반적인 정신병리학적 증상, 심리사회적 기능 장애에는 개선 효과가 입증되지 않았다고 보았다. 다만 신체에 대한 불편감을 줄이는 데에는 효과가 있는 듯 보였다고도 했다. 2019년의 조안나 브릭스 연구소(JBI)에서 내놓은 논문 비평에서는, 환자들의 삶의 질이 몇 가지 측면에서는 향상되기는 했으나, 양질의 연구가 없는 실정이고, 근거의 명확성이 매우 낮음에서 낮음 정도이기 때문에, 호르몬 치료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우울증이나 불안증을 개선할 방도로 추천할 수는 없다고 했다.

 

 여러분은 어떻게 안전성과 효과도 연구로 입증되지 않은 약물이 처방될 수 있는지 궁금할 것이다. 그것은 의사들이 약물을 "허가범위 외"에서 처방을 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성가신 FDA의 승인절차를 우회할 수 있는 것이다. "허가범위 외" 처방이란, 처방약을 승인되지 않은 용도로, 승인되지 않은 연령대를 대상으로, 승인 되지 않은 투여량으로 처방하는 것이다. 문제의 약물이 시장에 나와있는 이유는, 특정 집단에게 특정 투여량을 사용했을 때 한정으로 안정성이 입증되었다는 것이고, 특정한 질환에 대한 치료 효과가 연구가 선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 의사들은 입증되지 않은 용도로, 입증되지 않은 연령집단에 처방하고 있다. 따라서 안전성과 효과에 대해서 큰 의문부호가 붙는다.

 

 

4장: 간절함

 20세기초 1903년에서 1933년 사이에, 정신병 진단과 입원 사례가 폭증했다. 미국 내 정신병원들은 두 배 넘게 증설되었으며, 20세기 중반이 오면 500,000명가량이 정신병원에 한 번 이상 수용되었다. 당시의 정신병원 환경에서 생활한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었다. 정신약리학이 발달하기 전이었기 때문에, 전두엽 절제술은 환자들이 회복을 이루고 가정으로 돌아가 정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었다. 환자 가족들은 또한 사랑하는 가족 구성원이 자살을 감행할까 봐 두려워하곤 했다. 많은 이들이 급박함을 느끼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전두엽 절제술에 대한 연구가 부족하다는 점, 시술 도중 사망하거나 마비가 올 수 있다는 점은 간과되었다.

 

 유사한 상황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다. 특정한 측면에서 극도의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들이 폭증하면서 말이다. <대인 간 폭력>지에 실린 한 연구에서는 소위 "트랜스젠더" 청소년들 중 86퍼센트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으며 56퍼센트는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기에 부모들이 간절함이 앞서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안전성과 효과가 입증되지 않은 방법까지 시도하는 것도 이해는 간다. 그러나 동일한 연구에서, 그러한 자살 충동의 근본 원인을 대부분 학교에서의 따돌림과의 연관성에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따돌림 행위에 대한 인식을 제고하고 해법을 찾기보다는 따돌림을 받는 아이의 신체를 바꾸는 데에 주안점이 놓아진다. 또 하나 언급해야 해야 하는 것은, 자살을 하겠다는 엄포에는 진심이 담겨있는 경우도 있으나, 자아도취적인 학대자들이 타인을 조종하고자 할 때 가장 즐겨 쓰는 술수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학술 연구라는 틀로 접근했을 때는 이러한 술수와 진짜 자살 충동을 가려내기 힘들다.

 

 

5장: 과장 광고

 전두엽 절제술과 젠더 치료 모두 적절한 검증 과정을 거친다면 미심쩍은 치료 관행이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검증 시도가 보이지 않는다. 인체실험 기회를 원하는 의사들이나 간절한 환자들 및 가족들이 스스로 검증을 하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따라서 언론이 제 역할을 해야 하지만, 그러지 않고 있다. 1937년에 프리먼과 그의 동료들은 미국의학협회 학회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시술한 침팬지들을 선보였다. 성인 침팬지는 상당히 힘이 세고, 보통 인간들에게 공격성을 보인다. 그런데 프리먼이 데려온 침팬지들은 유순하고 우호적이었으며, 쓰다듬는 손길도 거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뉴욕 타임스는 열렬히 지지하는 기사를 일면에 실었다. 회의론이 존재한다는 것을 언급하기는 했으나, "영혼의 수술"이라며 전두엽 절제술을 칭송했고, 시술을 받은 환자 중 65퍼센트가 중간 수준에서 아주 극적인 수준까지 치료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수술로 치료되는 16가지의 장애를 열거했으니 독자들의 마음도 들떴을 것이다. 1942년에 뉴욕 타임스는 프리먼 저서 <정신 수술>의 서평을 다음처럼 썼다, "대부분의 소설보다 흥미진진한 책이었다. 왜 아니겠는가? 뇌 속을 탐사한다든가, 제어할 수 없는 정신이 서서히 정상적으로 돌아온다든가 하는 과정은 어떤 소설가가 다룬 주제보다도 흥분되었다." 프리먼의 "성공 사례들"과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접근법"도 여기에 덧붙여졌다 프리먼은 이러한 언론의 찬사를 자신의 동료 또는 대중들에게 수술 효과를 납득시키는 작업의 양념으로 사용했다.

 

 뉴욕 타임스가 인체실험에 대해 보냈던 찬사는, 질병 정복에 대한 소망에서 비롯된 과오라고 봐줄 여지라도 있다. 그런데 오늘날의 뉴욕 타임스는 트랜스젠더 이데올로기를 쉼없이 찬양하고 전파하는 교묘한 선동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어떨 때는 그 편향성이 알아채기 힘들 정도로 미묘하다. 2022년 1월, 뉴욕 타임스는, 미국 아칸소 주에서 건강한 청소년들에 대한 호르몬 처방을 금지하는 법안을 다뤘다. 그 기사는 트랜스젠더 청소년들과 가족들의 강압적이고 과장으로 점철된 논평으로 도배되었다. 기사에서 한 청소년은, "저는 제 삶이 양도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법안이 통과되었다면, 사브리나라는 사람(본인의 성전환 이름)은 진정 죽는 것이나 다름없었을 거예요."라고 했다. 다른 청소년은, "우리는 그냥 우리 삶을 살고자 할 뿐이에요."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한 부모는 말했다. "제 딸의 존재 유지에 필요한 약물이 불법이 될 거라고 통보받는 것은 굉장히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기사는 청소년들이 법안을 읽기만 하고도 자살 충동을 느꼈다고 반복적으로 언급한다. 그런데 문제의 법안이 목표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언급하지 않는다. 영구적인 불임이나 골밀도 감소 등의 부작용이 있는 치료제를 청소년의 신체에 실험하지 말라는 목표 말이다. 그러나 뉴욕 타임스는 균형 잡힌 보도를 하기보다는, "논쟁"의 한쪽의 의견만 요란하게 소개하는 확성기 역할을 자처했다.

 

 

6장: 회의론의 묵살

 요즘에 젠더 이데올로기와 젠더 치료, 수술 등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거나, 조금의 의문이라도 제기하는 사람이 어떤 취급을 받는지는 모두가 안다. 회의론을 제기하더라도 묵살되고, 회의론을 제기한 사람은 학계에서의 직위를 박탈당한다. 의문을 제기하는 것만으로 "트랜스혐오자"라고 불리며 소외되고 발언권도 잃는다.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 규제를 제안하는 정치인도 혐오자로 여겨진다. 언론이 트랜스젠더 "의술"에 대해서 보도할 때도 회의론은 포함되지 않거나 구색 맞추기식으로 끼워 넣어진다. 이는 언론의 편향성을 나타내는 것이거나, 반대의견 내기를 꺼리는 사람들이 많아서일 수도 있다. 작가 조앤 롤링이 트위터를 통해 우려심을 나타냈을 때도, 유명 언론과 SNS는 그를 "트랜스 혐오자"로 낙인찍고 맹비난을 가했다. 옥스퍼드 교수 칼 헤네건이 낸 우려의 목소리에 공감한 것뿐이었는데도 말이다. 헤네건은 "근거의 결핍을 고려하면, 젠더 불쾌감 치료 목적으로 허가범위 외의 처방을 하는 것은 청소년들을 상대로 무허가 인체실험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두엽 절제술이 횡행하던 시절에는 회의론자들이 확실히 존재하기는 했으나, 결국에는 소용이 없었다. 1930년대에 월터 프리먼은 워싱턴DC 소재 성 엘리자베스 병원에서 근무했고, 여기엔 그가 인체실험을 해보고 싶은 대상자들이 그득그득했다. 그러나 병원 감독관 윌리엄 화이트는 전두엽 절제술을 "거짓되고 무책임한" 치료법이라고 칭했으며, 프리먼에게는 "자네가 내 환자들에게 수술을 하는 일이 일어나려면 최소한 강산이 뒤바뀌어야 할 걸세"라고 말했다. 그러나 1937년에 윌리엄 화이트가 죽으면서, 프리먼에게 전두엽 절제술을 시술할 자유가 생겼고, 그는 이윽고 행동에 나섰다. 나중에 독일 의사들이 프리먼에게 의구심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는 제2차 세계 대전 도중에 나치독일 하에 벌어진 인체실험과 조금이라도 비슷한 행위를 경계하는 분위기 때문이었고, 실제로 프리먼이 하던 수술은 외상성 뇌손상을 일부러 유발하는 행위였으므로, 1947년에 제정된 뉘른베르크 의료윤리 강령에 위반된다고 보았던 것이다. 뉘른베르크 강령은, 명시적이고 자발적인 동의가 있을 때에만 임상 실험을 할 수 있다는 원칙을 담고 있다. 그러나 프리먼은 회의론을 마주해도 가볍게 묵살했고, 의료윤리도 무시했으며, 합리성 및 근거의 결여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수술을 계속했다.

 

 

7장: 동의

 환자의 동의가 결여된 점은 전두엽 절제술과 현재의 "트랜스젠더 의술"이 공통적으로 가진 또 다른 문제점이다. 전두엽 절제술 환자들의 많은 수는, 정신병이라는 질병의 특성상 온전한 동의의 능력이 없었다. 일부는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정신병원에 수용된 경우도 있었고, 혹은 조현병 때문에 그들이 동의를 표한다고 해도 확실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그러나 1940년대와 1950년대에는 '동의'라는 법률개념이, 법률 개정을 몇 번 거친 현재만큼 정교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프리먼의 환자들은 수술의 구체적인 방법이나 잠재적인 위험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고지받지 못했다.

 

 오늘날의 "트랜스젠더 의술"이 가지는 동의의 문제는 아직 미성년자인 청소년들과 관련이 있다. 세계트랜스젠더보건의료전문가협회(WPATH)는 의사들에게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치료"를 시작하는 시기에 대한 지침을 제공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청소년들이 14세일 때 호르몬 치료를 시작할 것을, 15세에는 여성 청소년들에 한해 양쪽 유방을 절제시키는 수술을 시킬 것을, 17세에는 성기 절제 수술을 시키기를 권고하고 있다.

 

 청소년들이 법적으로 수술에 동의할 수 있는지는 주마다 다르고, 무슨 치료인지에 따라 다르다. 예를 들어 내가 사는 코네티컷에서는 성병이나 약물 중독, 정신 건강 치료에 한해, 연령에 상관없이 부모의 승인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나 법적으로 허용된 경우라도, 의료윤리에 부합되는지는 의문스럽다. 교차 성호르몬 요법과 사춘기 차단제는 골밀도 감소나 불임 등의 부작용이 알려져 있는데, 장기적인 효과는 아직도 대부분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청소년들이 동의를 할 수 있을까? 청소년들은 성인들 수준의 결정을 내릴 능력이 없고, 장기적인 영향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으며, 즉각적인 만족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것이 우리가 청소년들에게 담배를 피우거나 문신을 하지 못하게 하는 이유이고, 다른 많은 분야에서 부모의 승인을 먼저 필요로 하는 이유이다.

 

 

8장: 진지하지 않은 치료 과정

 젠더 치료는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환자들은 자기들이 받는 치료가 가지는 중대함을 알기 힘들 수도 있다. 언론인 애비게일 슈라이어는 작년 본인의 블로그에서, 미국 내에서 여성 청소년들을 상대로 테스토스테론을 가장 많이 공급하는 단체 중 하나인 가족계획협회에서 이루어지는 테스토스테론 투약 과정이 진지하지 않음을 지적한 바가 있다. 그에 따르면 여성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단체로 방문하여, 낄낄대면서 투약을 기다리며 "사전 동의서"를 읽지도 않은 채 서명한다. 이 환자들이 투약을 거부당하거나 먼저 상담을 받을 것을 권유받는 일은 한 번도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이 환자들은 정식 의사도 아니고 이전의 의료 경력도, 정식 훈련 경험도, 전문성을 입증할 자격증도 하나 없는 "젠더 상담사"들의 진료를 받게 된다. 이러한 가벼운 분위기에서 환자들이 자신들이 시작한 여정이 어떤 무게를 가지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이상하지 않다.

 

 전두엽 절제술의 경우도 비슷했다. 전두엽 절제술은 두뇌를 건드리는 수술인데도, 프리먼과 동료들은 외래환자에게 간단한 시술을 하는 정도로 여겼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프리먼은 외과 수술 훈련 과정을 밟지 않았는데도, 얼음송곳을 누군가의 뇌에 때려박는 것을 "경미한" 신경 조정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그는 병원이 아닌 본인의 개인 사무실에서 전두엽 절제술을 진행했다. 위생 수칙도 지키지 않았다. 수술은 많은 경우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예약부터 시술까지 전 과정이 15분 정도면 끝났다. 물론 수술의 결과는 경미하지 않고 심각했지만 말이다.

 

 

9장: 비극적인 결과

 수천에 달하는 비극적인 전두엽 절제술의 실패 사례들 중에 하나로는 로즈메리 케네디의 사례가 있다. 과잉 성취자들로 가득한 케네디가에서 로즈메리는 겉돌았다. 출생 당시의 뇌손상으로 학습 장애를 얻었기 때문이다. 로즈메리가 대체로 쾌활하지만 가끔은 난폭한 면도 있는 젊은 숙녀로 자라나자, 그의 아버지는 월터 프리먼에게 로즈메리의 괴벽함을 치료해달라고 요청했다. 로즈메리는 전두엽 절제술을 받고 나서 언어장애와 부분마비, 대소변실금이 생겼으며, 걷는 법과 양치질하는 법, 옷 입는 법을 다시 배워야 했다. 본인이 딸에게 저지른 만행으로  수치심을 느꼈던 로즈메리의 아버지는, 로즈메리를 요양병원으로 보내버렸으며 로즈메리는 평생 바깥세상과 격리된 곳에서 살다 죽었다. 많은 전두엽 절제술 환자들이 수술 도중에 죽기도 했다. 특히 뇌출혈로 사망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다. 수술로 인한 감염이나 대소변실금, 마비, 발작, 긴장증도 흔했다. 결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도, 어쩔 도리가 있었겠는가. 부작용은 평생 갔다. 수술 전 상태로 회복되는 경우는 없었다.

 

 우리는 오늘날의 "트랜스젠더 의술"을 경험하는 환자들에게도 회복 불가능한 상해가 가해지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전문가들은 호르몬 치료의 강도는 약하며, 치료 결과도 되돌릴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신빙성은 적다. 호르몬 치료의 효능은 아직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반면, 합병증은 잘 알려져있기 때문이다. 여성에게는 예컨대 불임과 혈전증, 고혈압, 고콜레스테롤혈증, 당뇨병, 체중 증가, 수면 무호흡증, 질 위축 등의 위험성을 가져온다. 자궁 절제술을 받은 여성은 관상 동맥 질환과 울혈성심부전, 특정 부위 암, 우울증, 치매 등의 위험성이 크게 증가한다. "음경성형술"이라고 불리는 수술을 받은 여성들은, 회복 보조 작업치료를 필요로 하는 광범위한 흉터 형성을 경험한다. 또한 요도나 누관이 막히거나 이식된 조직이 완전히 괴사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합병증은 가벼운 것들이 아니며, 환자들은 한때 건강했던 신체로 돌아갈 수 없다.

 

 호르몬 요법으로 남성들에게 생길 수 있는 합병증으로는 소위 "화학적 거세"라고도 불리는 고환 위축이나 성욕의 감퇴, 발기 부전, 불임 등이 있다. 거기에 혈전증, 고콜레스테롤혈증, 체중 증가, 고혈압, 당뇨, 뇌졸중, 유방암 등의 위험성도 있다. 이것들은 삶을 뒤바꿔놓을 정도의 질환이며 가벼운 부작용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것들이다. 남성들이 성기 수술을 거칠 경우, <남성병학>지의 2021년 연구에 따르면 합병증이 20~70퍼센트 정도로 나타나며, 구체적으로는 감염이나 조직 괴사, 요도 상해, 상처 관련 합병증, 과다 출혈, 혈전증 등이 있다. 어떤 합병증은 추가적인 수술을 요하기도 하지만, 어떠한 수술도 원래의 건강한 상태로 몸을 재조립할 수는 없다. 한번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담을 수 없다.

 

 

10장: 희생되는 소수자 집단

 과반수의 전두엽 절제술 환자(60퍼센트)는 여성이었다. 전두엽 절제술은 제멋대로이고 활발한 성격에 대한 치료법으로 여겨졌으며, 남성이 아닌 여성이 그런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두엽 절제술의 목표가 된 다른 집단은 동성애자들이었다. 동성애 성향은 1973년까지 미국심리학회에 의해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었다. 동성애 행위는 성도착 질환으로 여겨졌기에, 전두엽 절제술로 생긴 무기력증 상태는 환자의 이상 성욕이 치유된 증거로 간주되었다.

 

 오늘날에도 비슷한 광경을 볼 수 있다. "젠더 비순응적" 청소년들이 환자의 길로 떠밀리고 있다. 젠더 산업계(gender industry)는 "여자아이도 모든 걸 할 수 있단다. 놀고 싶은 대로 놀아."라고 말해주는 대신, "남자아이 장난감을 좋아하는 너는 사실 남자아이란다."라고 말하면서, 온갖 호르몬 치료와 외과수술로 여자아이의 신체를 "남성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내가 꼬집어서 여자아이를 언급하는 이유는, 전두엽 절제술과 마찬가지로 여성 환자들이 과반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는 18세 미만의 청소년 환자들을 "성전환"시키고자 하는 진료의뢰 건수가 2009년의 77건에서 2018년과 2019년의 2,590건으로 폭증했고 그중에 70퍼센트는 여성 환자가 차지했다. 그 아이들 중 적지 않은 수가 아마도 레즈비언으로 자라났을 것이다. 요즘에는 점점 레즈비언이라는 정체성이 수치스럽고 "트랜스 혐오적"으로 간주되고 있지만 말이다(역자 주: 레즈비언들이 생물학적으로 남성인 트랜스 여성까지도 잠재적인 데이트 상대로 고려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트랜스혐오라는 일부의 주장을 가리킨다). 다시 말하자면, 사회에 동성애 혐오의 기류가 다시 발호하고 있으며, 동성애가 의학적으로 치료해야 하는 무언가로 간주되고 있다는 것이다.

 

 

결론

 우리가 마음을 열면서 역사책도 열어보면, 광범위한 비극을 초래할 수 있는 패턴을 과거로부터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과거 공부를 철저히 하는 학생이 되어야 많은 이들이 미래에 겪을 고통을 예방할 수 있다. 한때 돌팔이 의사들은 사회의 가장 취약한 이들을 상대로 심각한 범죄를 저질렀고, 고의로 간절한 이들에게 끼친 상해는 공상과학 판타지를 이용해 정당화할 수 있었다. 우리는 이러한 인체실험 행위를 검증하는 작업에 실패했기 때문에, 동의할 능력이 없고 많은 경우 소수집단에 속했던 환자들이 경박하게 남발된 시술의 비극적인 예후를 감내해야 했다.

 

 이러한 수치스러운 일들은 오늘날의 "트랜스젠더 의술"에서 똑같이 발견된다. 호르몬 치료와 외과적인 수술이 "의학적인 도움"으로 포장되고 있다. 전두엽 절제술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혹시나 여러분이 솟구치는 의구심에서 "많은 사람에게 처방범위 외의 약물을 처방하기 전에 과학적인 검증이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질문한다거나, "아이들이 이런 '치료'의 장기적인 영향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아니면 "14살밖에 안 된 아이가 임신능력이나 여타 건강상의 장기적 위험이 걸린 결정을 내릴 수 있을까?", "많은 수의 동성애 성향 청소년들이나 젠더 비순응적인 아이들을 거세시키는 것은 우생학의 일종 아닐까?" 등의 질문을 던진다면, 여러분에게는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의학적인 도움"에 훼방을 놓는 '편협한 사람(bigot)' 혹은 트랜스혐오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될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사람들이 인체실험을 당하지 않았으면 하는 편이 더 상냥하고, 더 "도움"에 가깝지 않을까? 전두엽 절제술처럼 광범위한 비극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으려고 하는 편이?

 

 오늘날의 우리에겐 과거를 반추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고, 우리는 그 이점을 써먹어야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회의론자들과 내부고발자들, 그리고 탈성전환자들(detransitioners)-이미 이 구조에서 상해를 입었지만 자신의 경험을 나누고 싶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이 외치는 "트랜스젠더인들을 돕자!"라는 구호는, 환자들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 않는 의료체계로 그들을 몰아넣자는 뜻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이러한 취약한 집단을 지원하는 다른 방법을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이 의료체계를 비판적인 눈으로 보고 재구성하여 사람들이 입는 해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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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쟁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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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메모

2022. 3. 9. 20:00

이재명 윤석열(윤성녈)

1. 이재명 - 사회주의적이고 포퓰리스트 성향. 약간 실행력이 강해서인지 독재자끼가 보임. 두루뭉술하지 않고 실용을 중시하는 미덕은 있는 것 같다. 탈원전 같은 명백한 삽질은 물리겠다고 문재인 행정부에 이견을 제시하는 걸 봤던 것 같은데 소속한 당이 당이니만큼 잘 모르겠다. 

2. 윤석열 - 그냥 길 가다가 보이는 보통의 쉰내나는 틀딱 느낌이 물씬 풍기고 행정부의 수장을 맡기에는 행정이라든가 경제라든가 전반적으로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게 토론에서 역력히 드러남. 정치 외적인 것으로 여론에 의해 띄워올려지고 어느새 대선 후보가 되어버린 느낌(물론 문재인도 그랬던 거 같음)? 얘를 뽑는다고 가정한다고 해도 얘를 보고 뽑겠다는 것이라기 보다는 민주당 집권 동안 경제 부문에서 삽질해놓은 거를 국힘이 복구시키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안철수와 막판에 단일화를 한 것도 안철수의 정책과 비전을 높이 샀기 때문에 플러스였다. 윤정권에서 안철수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가질지는 미지수라는 점에서 좀 미심쩍기는 하다. 

3. 여가부 폐지로 대표되는 '성별 갈등' 양상 - 인터넷으로 인해 과잉대표되는 20-30대 남자들의 이목을 잡기 쉽고 어쨌든 기득권이 남자들에게 있으니 미래에 더욱 영향력이 커질 20-30대 남자들을 우쭈쭈하기 위해 나온 것이 여가부 폐지라고 본다. 진짜 얘네만큼 머가리 단세포인 집단은 별로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여가부는 애초에 많은 자원을 할당받는 부처도 아니고 여성/가족부에서 '가족' 정책 쪽에 훨씬 방점이 찍혀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런데도 여성이라는 글자가 들어갔으니 조리퐁 어쩌구 날조질하면서 어렸을 때부터 무지성으로 욕하던 애들이 정신연령은 그대로 유지한 채 몸만 자라나서(+투표권을 부여받아서) 여가부 폐지만 보고 찍겠다고 으스대는 게 지금의 이대남들이다. 

마찬가지로 정치경력도 일천하고 실제로 해낸 것도 없이 아가리만 열심히 터는 천둥벌거숭이 이준석이 나경원을 밀어내고 당대표가 된 것도(그리고 히스테리 마음대로 부리면서 계속 유지한 것도) 오로지 이대남 중심의 여성혐오적인 인터넷 커뮤니티들의 속성을 잘 이해하고 이용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고 본다. 그냥 자기가 그 커뮤니티의 일원이니까 말이다 ㅋㅋ... 그 사실을 티내고 싶어서 안달이 나 막 이대남들에게 윙크를 하고 재롱을 부리고 하트를 보내고 난리가 난 모습이 추하다. 이 좆XX 때문에 안철수의 단일화도 그르칠 뻔했지만 결과적으론 이루어졌으니 뭐.

거꾸로 말하면 여가부가 실질적으로 큰 힘이 있지도 않았고, 여성의 권익과 위상을 높이는 데에 큰 기여를 하지는 않고 있었다는 관점에서, 나는 윤석열이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들고 나왔다고 해서 안 뽑겠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저런 XX새끼들도 표를 가지고 목소리를 낼 권리는 있으니까 여가부라는 실질적으로 끼치는 영향은 적으면서 표는 많이 좌우할 수 있는 부처의 폐지를 밀어서 당선 확률을 높인다면 그렇게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물론 여가부의 정책 중 긴요한 것들은 다른 정부 부처와 지자체 등에서 확실히 이어받아야 하고 새로운 여성정책은 부처에 구애받지 않고 만들어서 실행하면 될 일이다. 인구의 반에 대한 정책을 굳이 특정 레이블과 울타리에 안에 가둬야 할 필요는 없다.

4. 한편 이재명 지지자들이 이재명을 안 찍으면 여자들은 위태로워진다라고 협박조로 말하는 것은 좀 비웃음도 나오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저렇게 생각하면 심각한 정치 과몰입 상태가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여자들은 이재명을 안 뽑아서, 민주당에 표를 안 줘서 갑자기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남성권력이 여성권력에 비해 너무 강하고 성차별적인 문화가 뿌리깊게 박혀있기 때문에 여자들이 위태로운 경우가 많은 것이지 당장의 선거결과에 따라 바뀔 양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재인 민주당 집권기에 진짜 여자들 권리가 신장된 게 뭐냐고 물어도 꼽을 게 없다. 젊은 여자들이 떼거지로 모여서 벌인 혜화시위에 호응한 정현백 여성부 장관을 짜르거나 여자들이 중심이 되어 벌인 낙태죄 폐지 청원 등을 적당히 뭉갠 것들은 기억이 난다. 대통령도 민주당이고 180석까지 줬는데 이래놓고는 이제 와서 민주당을 안 뽑으면 여자들은 다 죽는다는 식의 협박은 양심적으로 하지 말자. 

특히나 이재명이 소속한 당의 집권기간 동안 3명의 지자체 단체장이 성범죄로 나가리가 되고 그것을 묻기 위해 피해자를 압박한다든가 피해자의 신빙성을 훼손하기 위해 험담을 늘어놓는다든가 했던 측근과 보좌진들 중 대부분이 여전히 정치 경력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태연자약하게 할 수 있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 이재명이 여성기를 찢는다고 발언한 녹취록은 어쨌든 '네가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겠어?'라는 맥락으로 상대편에 돌려준 얘기라는 설명을 듣고 그러려니 했지만, 이재명이라고 해서 대단히 더 뛰어난 페미니스트라고 볼 증거는 희박하다. 윤석열이라고 해서 여성 치안 정책을 약속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5. 결론적으로 윤석열 쪽으로 살짝 기울기는 했다. 그런데 이준석에 대한 개인적인 비호감을 미뤄놓고 봐도 실력 없는 키보드워리어를 당대표로 계속 데려가는 당을 뽑는 게 맞는 건가 싶은 생각도 강하게 든다. 광대새끼를 간판에 내세운 것은 그냥 표를 위한 theatrics이며, 실제로는 내실있고 sensible한 국정 운영을 할 거라고 기대하는 게 내 헛된 희망에 불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신랄하게 비판했던 윤희숙씨가 윤정권에서 큰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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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선거 끝난 시점에 예약 발행될 것임. 개인적으로 누구를 뽑을지 고민했던 과정을 간략하게 적어놓은 메모이고 다른 사람의 선택에 당장 영향을 주려는 게 아니므로).

Posted by 쟁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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