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제: J.K. Rowling Writes about Her Reasons for Speaking out on Sex and Gender Issues

원문 에세이 업로드 날짜 및 장소: 2020년 6월 10일에 조앤 K. 롤링의 블로그에 올라옴, 

www.jkrowling.com/opinions/j-k-rowling-writes-about-her-reasons-for-speaking-out-on-sex-and-gender-issues/

 

J.K. Rowling Writes about Her Reasons for Speaking out on Sex and Gender Issues - J.K. Rowling

Warning: This piece contains inappropriate language for children.  This isn’t an easy piece to write, for reasons that will shortly become clear, but I know it’s time to explain myself on an issue surrounded by toxicity. I write this without any desi

www.jkrowling.com

 

주의: 이 글은 어린이들에게 부적절한 언어를 담고 있습니다.

 

이 글을 쓰는 것은 꽤나 힘든 일이었고 그 이유는 조금 뒤에 밝힐 것이지만, 대립하는 사람들의 적의로 가득한 이 이슈에 대해 내 입장을 표명할 때라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적의에 내 몫까지 보태고 싶지 않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 싶다.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나는 지난 해 12월 마야 포스테이터(Maya Forstater) 씨에 대한 지지를 트위터를 통해 표했는데, 그 이유는 마야 씨가 '트랜스혐오적인' 내용을 트위터에 올린 죄로 세무 전문가로서의 계약을 해지 당했기 때문이었다. 그에 대해 마야 씨는 고용재판소를 통해 소송을 제기했고, 판사에게 '성별이 생물학적인 특징에 의해 정의된다'는 철학적인 신념이 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있는지를 질의했다. 테일러 판사의 대답은 "보호받을 수 없다."였다.

트랜스 이슈에 대한 나의 관심은 마야 씨 사건보다 거의 2년 정도 앞서서 생겨났으며, 그 기간 동안 나는 젠더 정체성이라는 개념을 둘러싸고 이루어졌던 논쟁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트랜스젠더인 사람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고, 트랜스젠더들과 젠더 전문가들, 간성인들(intersex), 심리학자들, 아동안전보호 전문가들(safeguarding experts), 사회복지사들, 의사들 등 여러 사람이 쓴 온갖 책과 블로그글, 기사글들을 읽었으며, 온라인과 전통적인 미디어에서 일어난 담론에 귀를 기울였다. 트랜스젠더 이슈에 대한 내 관심은 어떤 면에서는 공적인 성질의 것이었다. 왜냐면 나는 현대를 시대 배경으로 하는 소설을 쓰고 있고 소설 속의 여성 형사 주인공이 이런 이슈에 관심을 기울이고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아주 개인적인 관심사이기도 했는데, 그 이유에 대해서는 곧 설명할 것이다.

내가 조사를 하고 배우는 동안, 내 트위터 타임라인은 트랜스젠더인권운동가들의 협박과 비난으로 넘쳐났다. 이 모든 사태는 하나의 '좋아요'로 촉발되었다. 내가 젠더 정체성과 트랜스젠더 문제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을 무렵, 나는 나중에 특정 의견들을 더 조사하리라고 기억을 상기시키는 용도로 스크린샷을 찍기 시작했다. 그런데 한 번은, 별 생각 없이 스크린샷 기능 대신 '좋아요'를 찍고 말았다. 그 단 하나의 '좋아요'는 사상범죄의 증거로 여겨졌으며, 나를 향한 저열하고 줄기찬 괴롭힘이 시작되는 계기가 되었다.

몇 달 후에는, 의도치 않은 '좋아요' 범죄에 더해 막달렌 번즈(Magdalen Berns)라는 인물의 트위터를 팔로우하는 대역죄까지 저지르고 만다. 막달렌은 엄청나게 용감하고 젊은 페미니스트이자 레즈비언으로, 두뇌에 생긴 악성 종양으로 인해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그와 직접 연락하고 싶은 목적으로 그의 트위터를 팔로우했으며, 목적을 달성했다.

이런 얘기를 하는 이유는 내가 마야 씨를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에 대해서 완벽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서이다. 그때쯤이면 나는 이미 네 번인가 다섯 번 정도의 '캔슬(cancel = 여러 사람이 물의를 일으킨 유명인을 사회적으로 추방하는 행위)'을 당했을 시점이다. 나에게 폭력을 휘두르겠다는 위협도 예상했던 바이고, 내가 문자 그대로 트랜스젠더인들을 죽이고 있다는 말도, 보지년(cunt)이나 개년(bitch)이라고 불리리라는 것도, 내 책이 불에 타리라는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물론 한 남성은 내 예측을 벗어나서 내 책을 거름으로 쓰겠다고 했지만.

내가 정말로 예상하지 못했던 것은, 내가 '캔슬'되고 그 여파가 아직 가시지 않았을 때, 사람들이 산더미 같이 많은 편지를 내게 보낼 것이고, 그 편지들의 대부분이 감사를 표하고 지지를 보내는 내용이리라는 것이었다. 편지를 보낸 사람들은 상냥하고, 동정적이며, 지성적인 사람들이었고, 그들 중 일부는 젠더디스포리아(성별 불편감)를 치료하는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있었으며, 사회정치학에서 만든 개념(젠더)이 정치계와 의료행위, 어린이안전보장정책(safeguarding)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하는 트랜스젠더인들도 있었다. 그들은 나이 어린 사람들과 동성애자들이 처한 위험과 여성과 여성청소년들의 권리 침해에 대해서도 걱정이 많았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특히 트랜스젠더 젊은이들에게- 공포를 조장하는 분위기에 대해 걱정했다.

나는 마야 씨에 대한 지지를 표하기 전과 후에 한동안 트위터에서 물러나 있었는데, 왜냐면 트위터가 정신건강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트위터에 돌아온 이유는 오로지 코로나가 창궐한 시기에 어린이들을 위해 쓴 소설을 무료로 배포하기 위해서였다(역자 주:  어린이 소설<Ickabog>를 무료로 배포한 것을 가리킴). 자신들이 정의롭고, 상냥하고, 진보적이라고 믿는 트랜스젠더인권운동가들은 곧바로 내 트위터 타임라인으로 몰고 들어와서 내 발언권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내가 혐오자라고 주장하거나, 나에게 여성혐오적인 욕설을 사용하거나, 나를 -트랜스젠더 논쟁에 참여해 본 여성들이라면 익히 알고 있을- 터프(TERF)라고 불렀다.

당신이 터프(TERF)라는 말을 몰랐다면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니지만- 터프(TERF)는 트랜스운동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약자로서, 트랜스젠더를 배제하는 래디컬 페미니스트를 뜻한다. 실제 단어의 용례를 보면, 여러 집단의 다양한 여성들이 터프라고 불리며, 대부분은 래디컬 페미니스트와는 거리가 멀다. 터프라고 불린 여성들의 예를 들어보면, 자신의 동성애자 아들이 동성애혐오적인 괴롭힘에서 벗어나고자 성전환을 하겠다는 것을 우려하는 어머니도 있고, 그전까지 페미니스트랑은 거리가 멀었으나 어떤 남자라도 '자신이 여자라고 정체화하면' 여성 탈의실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Marks & Spencer(의류 소매점)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맹세한 나이든 여성도 있다. 재미있는 점은, 래디컬 페미니스트들도 트랜스젠더들을 배제한다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여성으로 태어난 트랜스남성들도 여성의 범주에 포함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나 터프라고 지목하는 전략은 내가 한 때 존경했던 여러 사람들과 기관 및 단체들을 위협하기에는 충분했던 모양이다. 이들은 놀이터 애들 수준의 수법에 납작 엎드리고 있다. '쟤네가 우리를 트랜스혐오자들이라고 손가락질할 거예요!', '쟤네가 우리더러 트랜스인들을 혐오한다고 할지도 몰라요!' 다음에는 당신들 몸에 벼룩이라도 있다고 할까봐? 생물학적인 여성으로서 말하자면, 힘을 가진 위치의 사람들은 불알(balls = 영어로 '베짱', '용기' 등을 의미하기도 함)을 키울 필요가 있다. 흰동가리의 예를 들며 인간들도 마찬가지로 성별이 이분법적으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에 따르면, 인간 여성이라고 해서 불알을 키우는 게 불가능한 일은 아니니까.

그래서 대체 왜 나는 이 글을 쓰고 있느냐고? 왜 목소리를 내려는 거냐고? 왜 개인적으로만 조사하면서 얌전히 잠자코 있지 않느냐고?

글쎄, 내가 새로운 트랜스젠더 운동에 대해서 우려하고, 그 우려를 남들에게 알리려는 이유는 다섯 개 정도 된다.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스코틀랜드에서 여성과 어린이들의 사회적 빈곤을 완화하는 것에 집중하는 자선 신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탁은 다른 여러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지만, 특히 여성 죄수들이나 가정폭력과 성폭력 생존자 여성들을 지원하는 프로젝트에 금전적인 지원을 하고 있다. 나는 또한 MS(다발성경화증)라는 여성과 남성에게 매우 다르게 나타나는 질병연구를 지원하고 있다. 새로운 트랜스젠더 운동이 내가 지원하는 많은 활동 명분(cause)에 영향을 끼치거나, 그들의 요구가 실현됨으로서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왜냐면 새로운 트랜스젠더 운동은 성별(sex)의 법적인 정의를 약화시키고 궁극적으로 젠더(gender, 성별정체성)로 대체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유는, 내가 전직 교사이자 어린이 자선단체의 설립자로서 아이들의 교육과 어린이안전보장정책(safeguarding) 모두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다른 많은 이들과 마찬가지로, 트랜스젠더 운동이 교육과 안전보장정책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깊이 우려하고 있다.

세 번째 이유는, 내 책이 금서로 지정된 경우가 굉장히 잦았던 작가로서, 표현의 자유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개적으로 옹호해왔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표현의 자유도(역자 주: J.K.롤링이 정치적인 성향은 트럼프와 상극이지만 소셜 미디어 회사들이 트럼프의 계정을 검열하는 것에는 반대했다는 것을 가리킨다).

네 번째 이유부터는 정말로 개인적인 차원에 돌입할 것이다. 나는 어린 여성들이 갑작스럽게 폭발적으로 성전환을 하고자 하는 경우, 그리고 성전환을 취소(detransitioning)하는 경우도 계속해서 늘어나는 것이 걱정스럽다. 왜냐면 성전환을 하는 과정에는 경우에 따라 신체에 되돌릴 수 없는 변화가 생기고, 생식능력을 상실할 수도 있지만, 이를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 중 일부는 자기가 동성에게 끌린다는 것을 깨닫고 나서 성전환을 하게 되었다고 하며, 그런 결정에는 사회나 가정 내의 동성애혐오가 작용했다고도 말한다. (역자 주: 전통적인 동성애혐오 = "여자면서 여자를 좋아하면 안 되지, 너의 동성애를 치료하자.", 새로운 동성애혐오 = "여자면서 여자를 좋아하면 안 되지, 너를 남자로 만들어 주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음의 사실을 모를 것이다. 나도 제대로 조사를 하기 전에는 몰랐다. 10년 전에는 다른 성별로 전환하고 싶은 사람들의 대부분이 남성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은 그 비율이 반대가 되었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성전환 치료에 돌입하는 여성 청소년의 숫자가 4400퍼센트나 증가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성전환 치료에 돌입한 여성 청소년들 중 자폐증을 가진 아이들의 비율도 비정상적이고 지나치게 높다고 한다.

같은 현상이 미국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2018년에 미국인 의사 겸 연구가 리사 리트먼(Lisa Littman) 씨가 연구를 시작했고 한 인터뷰에서 그가 말하길:

"아이들의 부모들은 온라인으로 굉장히 비정상적인 현상이 일어나고 있음을 보고했습니다. 여러 명의 친구들, 혹은 또래 그룹 전체가 다 함께 같은 시기에 트랜스젠더로 정체화를 했다는 것이죠. 사회적인 전염 증상 혹은 또래집단으로부터의 압력이 작용했음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리트먼 씨는 텀블러와 레딧,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을 급속유행젠더디스포리아(ROGD = Rapid Onset Gender Dysphoria)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했고, 그런 소셜미디어가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청소년들이 만들어낸 배타적인 에코챔버(echo chamber = 소리가 내부에서 메아리치며 계속 울리는 반향실을 뜻하는데, 외부의 시각이나 간섭을 차단한 채 내부 구성원들끼리만 의견을 주고 받으며 외부/더 큰 세계와 단절되는 현상을 일컫기도 한다.)로 기능했다고 생각'한다. 

리트먼 씨의 연구 논문은 집단적인 분노를 유발했다. 리트먼 씨는 그가 트랜스젠더들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으며,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고 있다는 비난을 받았으며, 그의 학문적인 신뢰도에 흠집을 내려는 단체행동 및 괴롭힘에 몸살을 겪었다. 리트먼 씨의 논문을 출판한 학술지는 논문을 일단 온라인에서 내린 후 다시 리뷰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 결국 다시 출판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리트먼 씨의 커리어는 마야 씨와 마찬가지로 큰 타격을 입었다. 감히 트랜스 운동의 주요 교리 중 하나를 공격한 죄값을 치른 것이다. 그들은 젠더 정체성(=자신이 남자/여자라고 느낌)이 성적지향(=남자/여자에게 성적으로 끌림)처럼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고 했고, 어느 누구도 다른 사람의 설득에 의해 트랜스젠더가 되는 경우는 없다고 했으니 말이다.

현재 트랜스 운동가들이 많이 주장하는 것 중에 하나는, 젠더디스포리아를 앓는 십대 청소년들에게 성전환을 시켜주지 않으면 그들이 자살을 하고 말 거라는 것이다. 그러나 마커스 에반스(Marcus Evans)는 타비스톡(Tavistock)이라는 영국국민의료재단 산하의 젠더 클리닉에서 스스로 사임하고 그 이유를 설명하는 글에서, 상기 주장은 어떠한 실질적인 데이터나 연구로 뒷받침되지 않는다고 했고, 자신이 몇십 년을 심리치료사로 일하면서 접한 환자들의 경우를 미루어 봐도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트랜스남성들의 글을 읽으면 그들이 특출나게 세심하고 명석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다. 트랜스남성들의 자신들의 젠더디스포리아를 설명하는 것, 통찰력을 가지고 불안 장애, 분열 질환, 식이 장애, 자해와 자기혐오 등을 함께 묘사하는 것을 읽을수록, 내가 30년 늦게 태어났으면 나도 성전환을 했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된다. 여자됨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유혹은 엄청나게 달콤했을 것이다. 나는 십대 시절 심한 강박 장애에 시달렸다. 내가 실제로 내 주변에서는 찾지 못했던, 날 지지하고 공감해주는 공동체를 온라인에서 찾았다면, 나도 아버지가 내게 대놓고 말했던 희망사항대로 딸이 아닌 아들이 되는 길을 택했을지 모른다.

또한 젠더정체성에 관한 이론들을 읽고 있자면, 내가 어렸을 때 정신적으로 내 성별에 국한을 받지 않았던 것이 떠오른다. 콜렛(Sidonie-Gabrielle Colette)이 자기자신을 '정신적인 자웅동체'라고 표현한 것도 기억하고,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의 이런 말도 생각난다. "미래의 여성들이 자신의 성별에 지워진 제약에 대해 분개하는 것은 완전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진짜로 중요한 질문은 그녀가 왜 그 제약을 거부해야 하는지가 아니고, 그녀가 왜 그 제약을 받아들이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1980년대에는 내가 남자가 될 수 있는 현실적인 가능성이 없었으므로, 나는 책을 읽고 음악을 들으면서 정신건강문제, 그리고 많은 소녀들이 자신의 몸과 싸우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여자의 몸에 쏟아지는 모멸적인 비판과 평가 등을 그럭저럭 견뎌넘겨야 했다. 운이 좋게도, 나는 여성이 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나만의 독특하고 모순적인 답을 여성 작가나 여성 음악가들의 작품에서 찾았고, 그 덕분에 성차별적인 세상이 여성의 몸을 가진 이들에게 무슨 고난을 선사하든 간에, 굳이 분홍색에다 프릴이 하늘하늘하게 날리는 생각이나 순종적인 생각을 머릿속에 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혼란스럽고, 어둡고, 성적인 생각을 하거나, 동시에 성적인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고, 내 자신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알지 못해도 괜찮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확실히 하고 싶은 것이 있다. 나는 성전환이 일부 젠더디스포리아 환자들에게는 한 가지 해결책이 될 수도 있음을 안다. 물론 연구에 따르면 십대 젠더디스포리아 환자들 중 60~90퍼센트는 자라면서 젠더디스포리아에서 자연스럽게 벗어난다고 하지만 말이다. 나는 '제발 직접 트랜스젠더들을 만나 보라'는 말을 지겹게 듣고 또 들었다. 아, 글쎄, 이미 만나봤다니깐? 아주 사랑스러운 어린 친구들도 만나봤고, 자신을 트랜스섹슈얼로 칭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트랜스여성도 만나 봤는데 그 사람은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 자신이 예전에는 동성애자 남성이었다고 밝히기는 했지만, 나는 그 사람이 여자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생각하기가 어려웠다. 또한 그는 성전환을 해서 정말로 행복하다고 했다(나도 그러길 바라고). 그러나 그는 나이가 많은 만큼, 예전에 아주 긴 심사와 심리치료, 단계적인 성형수술 등을 거쳤다. 최근의 트랜스젠더 운동의 경우, 기존의 성전환과 성별 정정 평가 과정에 필요한 거의 모든 단계를 없애라고 주장해왔다. 따라서 지금은 어떠한 수술이나 호르몬 치료의 의지가 없는 남성도 젠더인정증명서(Gender Recognition Certificate)를 발급받아 법적으로 여자가 될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를 전혀 모르고 있다. 

우리는 내가 경험한 중 가장 여성혐오적인 시기를 살고 있다. 1980년대에는 내가 나중에 딸을 가지게 된다면 그 아이는 내가 겪었던 것보다 훨씬 나은 삶을 살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페미니즘에 대한 역풍과 포르노로 점철된 온라인 문화 틈바구니에서, 여자 아이들은 훨씬 악화된 환경에 처해있다. 지금처럼 여성들이 폄하되고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는 광경은 본 적이 없다. 공개적으로 폭로된 성범죄 혐의가 엄청나게 많을 뿐 아니라 '보지를 움켜쥐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한 적이 있는 자유세계의 지도자부터(역자 주: 도널드 트럼프), 자신들과 섹스를 해주지 않는 여자들에게 분노를 표하는 운동을 벌이는 인셀(incel = involuntary celibates = 비자발적 동정남들, 이들 중 일부는 총기학살도 저지름.)들, 터프들이 주먹 맛을 보고 재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트랜스젠더 운동가들까지, 남자들은 정치성향에 상관없이 이것 하나에는 동의를 하는 것 같다. "이 모든 고난은 여자들이 자초한 것이다." 여자들은 모든 곳에서 입을 닥치고 자리에 가만히 앉아있으라며, 그 명령에 불복하면 값을 치를 것이라는 메세지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나는 '여성됨(femaleness)'이 여성의 몸과 관련이 없다는 주장들이나, 생물학적 여성들이 공유하는 공통된 경험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들을 모두 읽어보았는데, 그것들이 모두 심대하게 여성혐오적이고 퇴행적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성별(sex)의 중요성을 부정하는 목적 중에 하나가 여성들이 자신들만의 생물학적인 특징을 인식하는 것, 혹은 여성들을 단일 정치 계급으로 만드는 여성들의 생물학적 특징들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에 있다는 것도 자명해 보인다. 내가 며칠간 받은 수백 통의 이메일들은 이런 식의 방해공작을 다른 사람들도 우려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자들은 트랜스여성들의 동맹이 되어주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며, 트랜스여성들과 자신들 사이에 아무런 물질적인 차이도 없다는 거짓을 받아들이고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역자 주: 여자들이 여자들끼리 모임을 갖거나 조직화를 하려고 하면 꼭 트젠들이 그 사이에 끼려고 하고, 안 껴주면 혐오세력이라고 욕하고 똥 뿌리는 것을 말하는 것 같다. 이게 그냥 여자들 사이에 끼기 위해서라면 극도의 진상짓도 불사하는 소수 트젠들의 개인적인 일탈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성별계급의 관점에서 보면, 여자들이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자기들끼리만 의견을 주고 받으며 독자적인 정치세력화를 하는 것을 방해하기 위해 남자들이 고안한 장치라고도 볼 수 있다. 진짜로 여자들만 엄청난 숫자로 모였던 혜화역 '불편한 용기' 시위대가 트랜스혐오세력이라고 비판받던 것을 보라.)

그러나 나 말고도 많은 여성들이 밝혔듯이, '여자'라는 개념은 겉에 걸치는 복장 같은 것이 아니다. 남자의 머릿속 추상적인 개념 같은 것도 아니다. '여자'는 분홍색 두뇌를 가지고 태어난다든지, 지미추 하이힐을 좋아한다든지 하는, 요즘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진보적인 것으로 칭송되는 그런 성차별적인 편견과도 관계가 없다. 게다가 요즘에 트랜스젠더들을 '배제하지 않기 위해' 여성들을 '생리인들(menstruators)'이나 '음부 달린 사람들(people with vulvas)'이라고 부르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여자들을 비인간화하고 비하하는 행위이다. 트랜스운동가들은 자기들 나름대로 그것이 배려하는 행위고 예의라고 생각한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폭력적인 남자들에게 평생 각종 비속한 말을 들어온 우리들에게 이런 언어는 가치중립적이지 않으며, 공격적이고 거북한 느낌을 준다.

그것에 이어서 내가 작금의 트랜스 운동이 가져올지 모르는 폐해에 대해 깊이 우려하는 다섯 번째 이유를 말해보겠다.

내가 대중 앞에 나선 지는 20여 년이 되어가지만, 가정폭력과 성폭력 피해를 경험했다는 사실은 한 번도 공개적으로 이야기한 적 없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났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워서는 아니고, 그 일들을 다시 떠올리고 되새기는 일이 무척이나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또 나는 첫 번째 결혼생활 시절에 낳은 딸을 보호하고 싶다는 마음도 강하다. 나에게 일어난 일이지만, 내 딸도 함께 경험한 그 일들을 내 마음대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에 딸에게 그 일을 공개적으로 솔직하게 털어놓는다면 어떨까 물었을 때, 딸은 그리 하라고 격려해주었다.

동정심을 유발하려고 이 얘기를 하는 게 아니고,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수많은 여성들, 특히 성별분리공간이 없어지는 것에 대한 우려를 이유로 혐오자라는 비난을 받는 여성들에 대한 연대의식에서 하는 것이다.

나는 어렵게 어렵게 첫 번째 결혼생활에서 탈출을 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성품이 선하고 지조 있는 남자와 결혼하였고, 백만 년이 가도 나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생각했던 안정감 있고 무탈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타와 성폭행으로 인한 상처는, 아무리 사랑을 받고 돈을 많이 벌어도 사라지지 않는다. 내가 맨날 소스라치게 놀라는 모습은 가족들끼리 재미있어하고 나도 내 스스로가 웃길 때가 있지만, 내 딸들은 절대 나와 같은 이유로 갑작스러운 소음이나 인기척 없이 뒤에서 나타나는 사람을 싫어할 일이 없기를 기도한다.

독자들이 내 머릿속에 들어올 수 있다면, 트랜스여성들이 폭력적인 남성들의 손에 의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들을 때 내가 느끼는 연대감과 동류의식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트랜스여성들이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 몇 초를 보내면서 느꼈을 강렬한 공포를 감각으로 느낄 수 있다. 왜냐면 나도 내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던 이유가 단지 나를 공격하던 남자가 손을 떨면서 스스로를 자제시킨 것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맹목적인 공포를 느낀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대부분의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들을 위협으로 여기지 않을 뿐 아니라, 여러 가지 원인들로 인해 보통 사람들보다 취약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트랜스젠더인들은 보호가 필요하고 보호받아 마땅하다. 여성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트랜스여성들도 성적인 파트너들에게 살해당할 확률이 높다. 성산업에 종사하는 트랜스여성들, 특히 유색인 트랜스여성들은 큰 위험에 처해있다. 내가 아는 모든 가정폭력과 성폭력 생존자들이 그런 것과 마찬가지로, 남성들에게 폭력 피해를 입은 트랜스여성들에게는 공감하고 연대하는 마음뿐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나는 트랜스여성들의 안전을 바란다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여성으로 태어난 소녀들과 성인여성들을 위험에 빠뜨리도록 하고 싶지도 않다. 여자화장실과 여자탈의실의 문을 자기가 여자라고 생각하는 모든 남자들에게 냅다 열어재끼게 되면 -내가 앞서 말했듯이, 젠더인정증명서는 이제 어떤 호르몬 치료나 외과적인 수술을 거치지 않아도 발급받을 수 있다-, 그 공간에 들어오고 싶은 모든 남자들에게 문을 여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그것이 꾸밈없는 진실이다.

토요일 아침에는(역자 주: 이 글이 2020년 6월 10일에 발행된 글이니, 2020년 6월 6일을 말하는 것? 정확한 시점은 불명.), 스코틀랜드 정부가 젠더인정증명법안을 원안대로 추진하기로 했다는 소식을 읽었는데, 사실상 남자가 여자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은 '자신이 여자라고 말하는 것' 말고는 없게 될 거라는 뜻이다. 시쳇말로 나는 '버튼이 눌렸다(triggered = PTSD 혹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가 발현되었다는 뜻인데 요즘에는 그냥 '빡쳤다', '꼭지가 돌았다' 정도의 의미로 가볍게 쓰기도 한다)'. 코로나 봉쇄조치 아래 내 책을 읽은 아이들이 그려준 그림에 피드백을 주려는 목적 하나로 트위터를 켤 때마다 계속되는 트랜스운동가들의 쉼없는 공격에 지쳐 있던 나는, 새로운 소식으로 인해 내 머릿속 어두운 공간에서 토요일의 대부분을 보냈다. 내가 20대에 겪었던 성폭행의 기억이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듯했다. 나는 아주 취약한 공간에서, 아주 취약한 시간대에 있었고, 한 남자가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나는 그 기억이 자꾸만 떠오르는 것을 억누를 수가 없었고, 스코틀랜드 정부가 여성들과 소녀들의 안전이 걸린 문제를 졸속으로 밀어붙이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분노와 실망감을 가누기도 힘들었다.

토요일 저녁 늦게 잠에 들기 전, 아이들이 보내온 그림들을 보면서 페이지 스크롤을 내리던 중, 나는 트위터의 첫 번째 규칙을 잊고 말았다. -미묘한 차이를 논하는 대화가 가능할 거란 기대를 하지 마라!- 그리고 여자들에 대한 모멸적인 언어를 쓴 기사에 대해 반응을 하고 말았다(역자 주: '여자들(women)'이라는 말 대신에 '생리하는 사람들(people who menstruate)'을 사용한 기사가 있었음). 나는 성별의 중요성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주장한 이래 쭈욱 그 죗값을 치르고 있다. 나는 트랜스혐오자였고, 보지년(cunt)이었고, 개년(bitch)이었고, 터프(TERF)년이었고, '캔슬'을 당해야 마땅했고, 쳐맞아 싼 년이었고, 뒤져도 싼 년이었다. 내가 볼드모트라는 사람도 있었다. 나한테는 그렇게 말해야 알아들을 거라고 생각했나 보다.

사실 그냥 공인된 해시태그 문구를 복사해서 트위터에 붙여넣는 편이 훨씬 순탄했을 것이다. -물론 트랜스젠더들의 인권도 중요하고(Trans Rights Are Human Rights), 트랜스젠더들의 생명도 중요하니까(Trans Lives Matter)- 깨시민 뱃지를 잔뜩 쓸어 담아 가슴에 달고, PC함(Political Correctness = 정치적인 올바름)을 전시하는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며 도취할 수도 있었다. 시류에 영합하는 것은 재미있고, 편안하고, 안정감을 주니까 말이다. 역시 시몬 드 보부아르가 이야기한 것인데, "의심의 여지없이, 눈을 감고 구속 받는 편이 자유를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쉽다. 이 땅에서는 또한, 살아있는 것보다 죽어있는 편이 훨씬 수월하다."

많은 여자들이 트랜스 운동가들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있으며 그것은 이유 있는 두려움이다. 자신들이 트랜스 운동가들에게 당한 괴롭힘을 내게 알리기 위해 연락해온 여자들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 여자들은 신상털이를 당할까 봐, 일자리를 잃을까 봐, 물리적인 폭행을 당할까 봐 두려워 하고 있다.

나를 향한 꾸준하고 불쾌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열심히 '여자'라는 정치적이고 생물학적인 계급을 지우려고 노력하면서, 범죄자들에게는 보호막을 제공하는 등의 심대한 폐해를 끼치는 운동에 굴복하고 싶지는 않다. 나는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를 위해서, 또한 우리 사회의 가장 취약한 사람들, 이를 테면 나이 어린 동성애자들과 연약한 청소년들, 성별분리공간에 의지하고 성별분리공간이 유지되길 바라는 여성들의 권리와 안전을 위해 궐기하고 있는 용감한 여성들과 남성들, 동성애자들, 이성애자들, 트랜스젠더인들과 뜻을 같이 할 것이다. 설문조사를 보더라도 성별분리공간을 유지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절대다수에 속한다. 그렇지 않은 소수는 남성폭력이나 성폭력의 위험을 겪어보지 않았을 정도로 운이 좋거나 특권을 지닌 사람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일반적으로 자주 일어나는지 스스로 알아볼 생각조차 안 해본 사람들이다.

한 가지 희망적인 게 있다면, 반대시위를 조직하고 시위에 참여하는 여성들이 진실로 괜찮은 몇몇 남자들과 트랜스젠더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정당들은 공론장에서 가장 시끄러운 목소리를 내는 트랜스운동가들을 달래느라 여성들의 우려는 무책임하게 묵살하고 있다. 영국에서는 힘들게 얻어낸 여성인권의 후퇴와 여성들에 대한 전방위적인 위협 등을 우려하는 여성들이 좌우 당파를 초월해 서로 연대하고 있다. 내가 이야기를 나눠본 젠더비판적인 여성들은 트랜스젠더인들을 혐오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그들 중 다수는 애초에 트랜스젠더 청소년들에 대한 걱정으로 이 이슈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며, 그냥 남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고자 하는 트랜스젠더 성인들에게도 호의적인 태도를 보이는데, 특정한 트랜스 운동 방식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역풍을 맞고 있는 것이다. 가장 역설적인 부분이라면, 여성들을 '터프(TERF=트랜스 배제적인 래디컬 페미니스트)'라는 말로 입막음 하려는 시도는 최근 몇십 년 중에 가장 많은 수의 젊은 여성들이 실제로 래디컬 페미니스트가 되는 계기로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나는 이 에세이를 사람들이 읽고 바이올린을 연주해주기를, 하다못해 아주 작고 앙증맞은 바이올린이라도 꺼내어 연주해줬으면 하는 마음으로 쓴 것이 아니다. (역자 주: 이런 이야기를 하는 뒷배경에서 바이올린으로 슬픈 음악을 깔아주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즉, 위에서 동정표를 바라고 자신의 피해경험을 공유한 것이 아니라고 했던 것을 다른 말로 다시 한 것.) 나는 정말 유별나게 운이 좋은 편이다. 나는 확실히 생존자(survivor)이지, 피해자(victim)는 아니다. 내가 과거에 있던 일을 언급한 이유는 단지, 이 행성에 있는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복잡한 뒷이야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고, 그 뒷이야기가 나의 공포와 나의 관심사, 그리고 나만의 견해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야기 속 인물을 창조할 때도 그러한 내면의 복잡성을 절대로 빠뜨리지 않으려고 하며, 트랜스젠더인들을 생각할 때는 더욱 더 그렇다.

내가 원하는 게 있다면, 진실로 내가 바라마지 않는 것이 있다면, 내가 가진 것과 비슷한 연민의 감정과 비슷한 이해심이, 남들의 협박과 괴롭힘을 받지 않고 자신들의 우려심을 표출할 수 있기를 원한다는 죄가 전부인 수백만의 여성들에게도 베풀어졌으면 하는 것이다.

Posted by 쟁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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