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감독(그레타 거윅)이 감독한 여성 청소년의 성장기 영화라는 점도 매우 중요하지만(남자 청소년의 성장기는 쎄고 쎄서 거의 디폴트로 느껴지는 것에 비하면...) 그걸 생각하지 않아도 되게 현실적이고 재밌는 영화였다. 솔직하고 거리낌없는 레이디 버드 혹은 크리스틴이 사려깊음까지 장착하면서 좋은 인간으로 성장하고 꿈을 좇아가는 것이 좋았던 점이고 다만 엄마와의 관계는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채 끝나서 여운이 남으면서도 찝찝햇다. 그 느낌을 좀 설명해주는 리뷰글이 있어서 여기에 링크를 붙임. 


https://www.pastemagazine.com/articles/2017/11/lady-bird-isnt-about-a-mother-daughter-relationshi.html


이 리뷰어에 따르면 영화 속의 엄마 마리온이 레이디버드를 감정적으로 학대햇으며 그것은 '아~ 모든 캐릭터가 흠결을 가지고 있고 모두가 서로에게 상처를 줬잖아~'라고 뭉개고 넘어갈 디테일이 아니라는 것.


 리뷰를 참고해서 내 나름대로 얘기를 해보자면 첫 장면에서부터 너는 뭐 능력이 안되니 가르치는 돈이 아깝니 하질 않나(레이디버드가 달리는 차에서 몸을 내던지는 것으로 응하는 것이 애달프면서도 이 캐릭터의 성격을 단번에 보여주기에 웃겼다.) 방을 어질러놓은 것을 나무랄 때 뜬금없이 아빠의 실직사실을 오픈해서 죄의식을 자극하려는 것도 다시 생각해보면 굉장히 이상했다. 그 말을 듣고 레이디버드가 침착하게 자기 처지를 좀 공감해보라고 '한 번쯤 어질러놔도 엄마가 아무 말도 안하고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 없어?'라고 하니깐 거기에 또 자기 엄마는 자신에게 폭력적이었던 알콜중독자였다고 애 입장에서는 전혀 알 수 있는 도리도 없고 질문의 의도와는 크게 상관이 없는 어두운 과거를 툭 내놓은 뒤 문을 닫고 나가버리는데 아니 대체 뭐하는 짓이냐고 이게 ㅋㅋㅋㅋㅋㅋ


 다른 예를 들어보자. 영화 중간쯤에 여성들이 자기의 선택에 따라 결정할 수 있는 것이 낙태라고 가르치는 대신 감정에 호소해 낙태를 죄악시하려는 선생님이 나온다. 그것을 듣던 레이디버드가 나름대로 용감하고 논리적인 반박을 하고 정학을 먹는다. 나라면 아마도 그 용기를 칭찬하고 뭐 정학을 먹었다고 니가 틀린건 아니다 어쩌고 저쩌고 했을 것 같다. 굳이 트집을 잡자면 니 생각은 옳지만 선생님에게 상처가 되지 않는 방식으로 말하면 어땠냐고 말할 수도 있고 부모가 이런 상황에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거다.

 

 그런데 마리온이 선택한 길은 뭐였느냐...? 일단 레이디버드의 용감한 발언을 '자신과 남편에 대한 반항'으로 마음대로 규정내린 뒤 애비가 자기하고만 공유하고 있던 심리적인 문제를 기어코 또 꺼내와서 레이디버드를 당황시킨다. 레이디버드의 풀죽음을 보고 기회는 이때다하고 우리가 충분히 못해줬다 우리라고 이러고 싶은줄 아냐 등등의 전형적인 수동공격도 쿠콰콰콰쾅 발사한다... 레이디버드가 충분히 잘해줫다 생각한다고 호소하지만 듣는 체조차도 않는다. 결국 듣다못한 레이디버드가 나한테 드는 돈 얼만지 적어봐 나중에 갚아줄게!하니깐 첫 장면에서 말한 것과 비슷하게 '니가 그 돈을 다 갚을만한 직업을 가질 것 같진 않다'라고 진지빨고 딸의 잠재력을 후려치는 말을 해서 말문을 막아버림... 차라리 그냥 '퍽이나 그러겠다!'라고 소리지르라고 시발 ㅋㅋㅋㅋㅋㅋ


 딸의 잠재력을 거듭 깎아내리는 것도 그렇고 본인이나 남편의 심리적인 문제들도 그것들이 마치 무기라도 되는냥 말다툼을 할 때마다 툭툭 던져대서 레이디버드의 허를 찌르고 낙담시키는게 패턴처럼 보여지고 있고 이정도 일관성이면 그냥 열띤 분위기에서 우발적으로 나오는 수준이 아니다. 어디부터 잘못되었다 말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위에 언급한 리뷰에서 감정적인 학대(emotional abuse)라는 단어를 쓴 것이 이해가 된다. 딸 말고 딸학교 신부라던지 지나가는 이웃 등의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사려깊고 상냥하다는 점에서 또 짜증이 날 수 밖에 없다. 요즘에 감정쓰레기통이라는 말이 있던데 딸을 자신의 우울감 불안감 열등감 등을 배출하기 좋은 쓰레기통처럼 대한 것으로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그외 프롬 드레스를 고르러 같이 갔을 때도 괜히 밥을 많이 먹은걸 얘기하고(레이디버드 본인이 거식증으로 농담을 할만큼 본인 신체이미지로 크게 스트레스를 받지 않으니 천만다행이지) 적당히 어울리는 걸 입었을 때 칭찬하는 것도 못해주고 사랑한다면서 좋아한다는 말도 끝끝내 못하는 등에서 묘한 느낌을 받았다. 엄마니까 무조건 딸을 사랑하고 좋아해야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랑한다면서 좋아한다는 말은 못한다는게 뭔 장난질인가 싶은거다. 


 암튼 암튼 그래서 결국 레이디버드의 성실한 관계 회복 시도에도 불구하고 엄마와의 갈등은 제대로 봉합되지 않은 채 영화가 끝나는데 오히려 보통 영화들처럼 완결성을 가지기 위해 억지로 갈등을 해소했다면 더 별로였을 것 같다. 엄마 말고 단짝 친구나 벽장 게이 친구, 재수없는 애들, 교장이신 수녀님?, 아빠 등등과는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일단락이 지어지니까 마냥 찝찝하지도 않고 결론은 재밌었다는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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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스스로 변할 생각이 없다면 그냥 봉합이 안되는 쪽이 맞겠다. 


Posted by 쟁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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