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방영 중인 드라마 중에 나의 페이버릿 쇼?였는데 드디어 빠빠이했다. 정치인간들이 사실은 우리랑 별 다를 게 없는 사람이라는 거를 보여주는 동시에 기회를 포착했을 때 얼마나 동물적인 본능을 발휘하는 지 등을 극적으로 잘 보여주는 드라마이다. 어떤 인간적인 감정이나 원칙/신념과는 다른 오로지 승리를 좇는 감각 말이다. 이 쇼가 정치인간들의 평범성을 보여주는 장치 중에 하나는 오색빛깔 욕무지개로 대표되는 솔직한 뒷담화인데... 이게 또 정말 배꼽잡을 만큼 웃기다. 베스트 욕지꺼리 모음이 있을 정도. 또한 이런 솔직한 욕무지개는 공적인 발화가 아닌 사적인 대화에서만 펼쳐지기 때문에 공적으로 말할 때랑 사적으로 말할 때 사이의 온도차를 보는 것, 그 경계가 가끔 무너져서 언론에 새어나간다든지 하는 상황 등의 소소한 재미도 있다. 거의 유일하게 공사 구분을 거의 안 하는(못하는) 인물이 하원의원으로 나서다가 나중에는 대통령 후보로까지 업그레이드 되는 조나 라이언이 있겠다. 아마도 현 미국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가 모델이 된 걸로 보임. 대선후보토론회를 WWE 개싸움으로 만들고도 당선되었으니깐. 

최근에 방영된 마지막 시즌에는 트럼프-러시아의 공모스캔들을 의식한듯 (러시아 대신) 중국의 선거개입을 첨가했고 그 외에도 이전 시즌 다 합친 거보다 더 많은 사건사고가 벌어지며 막장으로 치달았다. 조나라이언의 근친상간, 셀리나의 전남편은 해상폭사하고 ㅋㅋㅋㅋㅋㅋ 게다가 편집 면에서도 내용 연결이 엉성한 느낌을 주고 인간들이 뜬금없이 소리를 많이 지른다는 감이 있어서 완성도 면에서는 전 시즌들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 다른 시즌처럼 10화가 아니라 7화로 다소 짧아진 게 예정과 다르다던가 한 게 아닌가 싶음. 어쨌든 재미는 있었고 결말도 맘에 들긴 했다. (에이미는 댄이랑 섹스하고 애가 생겨서 짐짓 댄과 정착하기를 원하는 듯하지만 댄은 지치지도 않고 항상 20대 초반 여자한테 찝적대는 모습을 보여서 결단을 딱 내리고 내가 TV쇼에서 본 것 중에 가장 쿨하고 감정소모 없이 낙태를 한다. 굿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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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언급하고 넘어갈 것이라면.. 마지막화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설리나가 유력한 남대통령 후보 탐 제임스에게 지고 있는 상황에서, 탐 제임스와 (합의된(?)) 성관계를 가지고 있던 여성 캠페인 매니저 미셸 요크에게 너를 하찮은 성적 대상물로 보는 남자를 위해 니 자신의 커리어를 버리는 게 안타깝다며, 너는 낭비되기 아까운 똑똑한 여자 아니냐고 툭 던진 뒤 사라진다. 이를 들은 그 미셸은 다음 장면에서 탐 제임스의 뒷통수를 치면서 자기는 성폭행을 당했다고 기자회견을 한다. 탐 제임스는 자기 캠페인 매니저에게 무슨 바람을 넣은 거냐면서 설리나에게 와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보지만 이미 본인의 정치인으로서의 생명은 끝난 마당에 체념하고 돌아가는데, 설리나는 돌아가는 그의 등에다가 "저렇게 감정적이어서야! 이러니까 여자가 대통령이 되어야한다는 거야. 핳핳하..."라는 명대사를 친다. 그리고 나중에 설리나가 대통령 집무실에 있을 때 바로 그 미셸 요크가 설리나의 보좌관으로 나타나면서 그녀가 톰 제임스의 뒷통수를 치고 설리나 정부에 합류를 했다는 것으로 드러난다. 물론 고상한 척 착한 척 존나 하던 톰 제임스가 뒷통수를 맞고 침몰하는 모습은 꿀잼이었지만 이런 묘사로 인해서 뒷맛은 찝찌름했다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입맛이 찝찌름한 이유야 뭐 보통 이런 상사-부하 간의 부적절한 관계의 예시들을 보면 안희정 같은 놈들이 5분대기조로 완벽한 수족처럼 부려먹는 관계에서 부하의 몸까지 맘대로 취하고는 우리 사랑했던 사이잖아 난 바람만 피운 거야~!라고 변호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니깐. 여기서는 오히려 캠페인 매니저 여자가 아주 적극적으로 톰 제임스와 관계하는 걸로 묘사가 된다는 점이 현실과 괴리가 있다. 또한 여자가 권력형 성폭행 폭로를 하고 대단한 이득을 본다라는 상황도 현실에서는 본 적 없잖아. 아니타 힐도 안 그랬고 김지은 씨도 안 그랬고 서지현 씨도 안 그랬고... 아마도 Veep에서 모델로 삼고 있는 듯한 모니카 르윈스키 씨도(빌 클린턴 백악관에 계셨던) 최근에 인터뷰를 보면 고생고생이 그런 고생이 없었다는데. 마이너스 -1,000,000이라면 모를까 플러스라고?

 

또 따져보면 허구인 Veep 속 미셸요크의 경우도 사실 대단한 이득을 봤다고 하기도 뭐하다. 본인의 폭로 이전에는 대통령 당선이 유력했던 톰 제임스 밑에서도 비슷한 정도의 위치를 약속받았을 거 아냐. 그러면 성폭행 폭로로 인해서 여자들이 감내하는 여성혐오적인 공격들을 견디고나서 이 여자가 얻는 것은 직위의 수평이동이다. 미셸요크가 원했던 것은 겉으론 도덕적인 척 하면서 자기를 '성적 대상물'로 보면서 달콤한 말을 속삭였을 남자를 개박살내고 본인의 주제파악을 솔직하게 제대로 시켜준 여자 밑에서 일하고 더 인간취급 받으면서 일하는 거였나? 셀리나가 미셸요크에게 던진 말도 사실 본인이 보좌하는 후보의 승리가 눈앞인 캠페인 매니저에게 딱히 내밀만한 카드가 없었기 때문에 계산적이라기보다는 에잇 내가 더러워서 꺼져준다 퉷퉷 하는 느낌으 말한 건데 오히려 그게 미셸요크에게는 더 어필이 되었던건가? 이게 작가진들이 디테일을 많이 생각 안 하고 그냥 매듭을 짓느라 이런 거라면 내가 괜한 소리를 하는 거지만, 곱씹어볼수록 설리나 마이어와 미셸 요크의 관계는 묘하게 흥미로웠다.


뭐 암튼 Veep의 미셸 요크처럼 비윤리적인? 여자가 있다고 치자. (탐 제임스의 육체관계가 시작된 발단은 묘사되어있지 않지만, 호텔에서 남이 안 본다고 생각될 때 와락 껴안으며 관계를 주도하는 모습을 보았을 때 이 여자의 행동이 totally fine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직속 상관과 부하라는 관계에서 부하직원이 무슨 불순한 의도를 갖고 유혹을 하건 말건간에 상관없이 상관이 부하직원과 성관계를 가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처벌을 받고 자기 자리에서 꺼지는 것이 무조건 맞다고 생각한다. 아마 부하도 정황에 따라 윤리적으로 비판받을 수는 있겠지만(밑도 끝도 없이 여자니까 욕하는 거 말고.) 그렇다고 해서 상관이 면죄부를 받을 수는 없는 거지. 뭐 꼬우면 지 자지 간수를 잘 하시든가... 무슨 동물도 아니고 말이지... 부하직원이 뭐라했든 간에 수직적인 권력관계에서 성적인 이득을 취하려는 인간은 누구한테 하소연할 권리가 없는 거다. 

Posted by 쟁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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