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목격한 성폭력

2016. 10. 23. 03:16

 며칠새 트위터에서는 #오타쿠_내_성폭력 해시태그로 시작해 각종 분야 남성들의 성폭력이 폭로되었는데 너무나 광범위하고 수법도 다양하고 교묘하고 저열해서 다시 한 번 한국 남자들에게 큰 실망을 했다. 남성들이 자신의 나이(성년의 미성년 강간), 권위(그 분야의 권위자로서의 명망), 권력(인사권) 등의 위계를 이용해 여성들을 성폭력하거나 희롱하고 그들의 직업에 대한 열정을 이용해먹으며 그것을 거부하는 이들에게는 폭언을 서슴지 않거나 왕따를 시키거나 기회를 박탈하는 등 나가떨어지게 만든 후 자신에게 부역하는 남성들의 편의를 봐주며 새로운 여성 희생양을 찾는 식의 성폭력 쳇바퀴가 셀 수도 없는 곳에서 돌아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회에서 남성과 여성의 직업적 불평등이 공평한 경쟁의 결과라고 하는 것은 안이한 현실부정이고 만연한 성차별/성폭력 문화의 은폐 시도에 불과하므로 이제부터 남자가 더 뛰어나서 그런걸 어쩌냐느니 하는 ㄴ소리를 하는 인간은 머가리를 깡 때려줄 것이다.


 거기에 여성들이 나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용기를 내고 있다는 것 자체도 너무나 존경스럽고 놀라웠다. 나물 님이 가련한 피해자 가족역을 원하는 사회에 중지를 치켜올리고 대장부와 같이 국가와 정면으로 맞서고 계신 것, 이화여대 학생 분들이 어느 대학도 따라올 수 없는 행동력을 뽐낸 것, 그리고 이번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서로의 용기를 증폭시킨 성폭력 폭로 릴레이 등이 그 예이고 모두 사회의 진보를 앞당기는 여성주도의 운동이엇다.


 그 정도가 모니터와 휴대폰을 통해 전해 본 소회이고 나는 남자라는 특권 덕분에 특별히 성폭력 피해를 당한 기억이 없다. 다만 여성 분들이 이번에 보여주신 용기의 천만 분의 일 정도를 써서 내가 목격했던(그러나 어떤 식으로든 바로 잡지 않은) 성폭력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나는 현재 방구석에서 취업 준비 중인 백수이고 전에 일하던 곳에서도 남자들하고만 일을 했기에 대체로 중/고등학교에서의 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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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중학교 시절 지적장애를 가졌던 것으로 추정되는 여학생이 계단에 쪼그려 앉아있을 때 앞에서 공개적으로 속옷을 구경하며 저들끼리 색깔을 이야기하고 더럽다는 식으로 궁시렁대며 그 여학생에게 모멸감을 주었다. 


 1년 간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한 번도 목소리를 들어볼 수 없던 학생이었고 수업시간이건 쉬는 시간이건 머리를 쳐박고 자리를 지켰으며 주위를 지나갈 때마다 악취가 심하게 났던 것으로 보아 자주 씻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던 것 같다. 그저 가끔 어떤 선생님이 상태를 확인하려고 말을 걸고 귀를 갖다대면 무어라무어라 입을 벙긋대는 것으로 봐서 말은 할 수 있구나 짐작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회의 무책임한 방치였고 그 학생에게 학창시절이 얼마나 악몽같았을지는 상상만 할 수 있다. 나를 비롯해 반에서 그 학생의 친구는 없었고 친구가 되어볼 시도조차 하지 않은 것이 미안하다. 체육시간에도 그는 언제나 열외로 스탠드에 앉아 얼굴을 파묻고 있었는데 한 번은 평소와 달리 구령대 왼편 계단에 위치해 쪼그려 앉아있었다. 자잘한 계단인데 엉덩이를 놓은 계단 바로 밑 칸에 발을 놓고 쪼그려 앉아있다보니 게다가 위치도 눈높이랑 딱 맞는 중간에 자리잡아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바로 속옷이 보이게 되었다. 그것을 눈치 챈 남학생들이 속옷이 보이는 위치에 서서 번갈아가면서 들여다보았고 속옷의 색깔을 이야기하거나 그녀의 체형을 비하하는 말까지 섞어가며 더럽다느니하는 말을 그 학생까지 들리게 떠들었다. 그 학생은 무슨 일인가 고개를 들었다가 앞에서 쳐다보는 남학생과 눈을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이기도 했다. 다행히 여학생 한 명이 다른 곳으로 인도해 앉히면서 상황은 끝났지만 안 그래도 힘든 사람에게 성적인 모멸감까지 느끼게 만드는 놈들이 너무하다 생각했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하지 않은 나 자신에게도 환멸을 느꼈다. 



2. 학교에서 단체여행을 가서 취침해야하는 시간일 때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특정 여학생의 이름을 들먹이며 "따먹고 싶다"고 소리쳤다. 


 시기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는데 수련회 가서 남녀가 숙소를 나누어 취침해야할 때 한 무리의 남학생들이 특정 여학생의 이름을 들먹이며 '따먹고 싶다'고 고함을 쳤던 것 같다.  곧장 교관(?)인가 하는 사람이 왔지만 모두 자는 척을 했고 교관이 모두 깨워놓은 채 자백을 받으려고 했으나 그 무리 남학생들의 보복이 두려워 혹은 공범의식으로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았고 한참을 단체로 벌을 받은 뒤 잠들 수 있었다. 그쯤 가서는 짐승보다 못한 추잡한 머슴아들에게 조금의 기대도 남아있지 않았고 남은 학창생활의 무력감과 우울감에 적지 않은 원인으로 작용했던 것 같다. 거의 풀타임으로 이어폰을 귀에 끼운 채 음악을 위안삼음과 동시에 반 학생들과의 벽처럼 이용하기 시작했다. 



3. 고등학교 시절 남학생들은 모든 여선생님에게 그러지는 않았지만, 오직 여선생님들의 수업에서만 통제를 잃고 떠들었으며 여선생님을 공개적으로 조롱했다. 


 고등학교 때는 남녀공학이되 남녀 분반이었는데 분위기가 어수선한 문과반 중에서도 가장 꼴통스러운 반에 속했었다. 2학년에서 3학년 넘어갈 때는 두 반을 합쳐서 다시 섞는 식이어서 똑같은 꼴통들과 2년간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중에는 자기가 되게 말주변 좋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놈이 있었는데 자기 동생이 동성애자면 어떡하냐며 더럽다고 패버리고 싶을 거 같다는 식의 얘기를 해서 내가 뭐라고 얘기한 기억이 난다. (그 일이 있고나서의 어색한 기류에서 짐작하건대 아마 걔랑 옆에서 듣던 애들은 내가 게이인줄 알았을 것 같다...) 그래도 듬직한 허우대에 비해 남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타입은 아니었기 때문에 호의적으로 생각했는데 다만 엄청나게 떠들었다. 특히 만만하다고 느껴지는 여선생님 수업시간에는 말끝마다 대꾸하면서 억지부리는 식으로 수업을 방해하는 경우가 잦았으며 반 전체가 그에 왁자지껄하게 웃으며 반응함으로서 그 친구를 더욱 부추겼다. 걔말고 덩치 큰 프랑켄슈타인처럼 생긴 다른 놈은 수업을 진행해보려고 애쓰는 선생님 몰래 뒤로 기어가서는 우두커니 서서 무심코 뒤를 돌아보는 선생님을 놀래키기도 했다. 명백히 '우리가 이래도 너는 아무것도 못해'라는 확신이 담긴 단체 괴롭힘이었다. 그 비열함에 대한 인식은 있었는데 그거에 대해 뭘 할 생각은 못했다. 이것은 성폭력까지는 아닌 것 같고 여성혐오/약자혐오 행위였다고 보면 될 것 같은데 성적인 농담(성희롱)을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걸 수도 있다.



4. 고등학교 시절 남학생 중 일부는 여선생님의 치마 속에 핸드폰 카메라를 집어넣고 촬영했으며 그것을 돌려보았다. 


 수업시간에 한 여선생님이 빨간 원피스를 입고 수업을 오셨던 날인데 선생님들이 으레 그러시듯이 학생들 책상 사이로 다니시면서 교과서를 읽기도 하고 자는 학생들을 깨우기도 하셨다. 그 때 되게 덩치가 크고 능글맞은 느낌이던 놈이 내 앞에 앞에 옆에 앉아있었는데 선생님이 옆을 지나가실 때 씨알도 안먹힐 몸짓 연기를 하면서 물건을 떨어뜨리고 줏는 동시에 휴대폰 카메라를 선생님 치마 속에 넣어 촬영을 했다. 이때는 핸드폰 카메라의 촬영음을 끌 수 있던 때였으므로 소리는 나지 않았고 선생님도 별다른 반응을 하시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선생님이 아주 살짝 고개를 아래로 하시더니 잠시 멈칫하면서 상황을 눈치채신 모습을 봤다. 그도 그럴것이 무슨 슬랩스틱 코미디처럼 다 티내면서 핸드폰을 뻗었으니까. 수업이 끝난 후 그놈은 촬영물을 자랑하듯이 다른 남학생들에게 보여주었다. 그때 무대응으로 넘어간 선생님이 어떤 감정을 느끼셨을지 짐작이 가며 몰카라는 성범죄 유형에 대해 많이 알게된 지금은 더욱 더 나를 자책하게된다. 다음 시간에 본 선생님의 안색은 전과 다를 바 없었지만 말이다.



5. 훈련소 동기들의 단톡방에서 누군가가 자신이 '홈런'(성관계를 뜻하는 은어)을 친 증거라며 신원미상의 여성분 누드사진을 모두가 볼 수 있게 올렸다. 


 몇몇 대학교에서의 사건으로 지금은 이러한 남성들의 단톡방 문화가 공론화 되었지만 그보다 전에 경험한 일이어서 개인적으로 적잖은 충격을 받았던 사건이다. 애초부터 그렇게 인간적인 기대치가 높은 그룹은 아니었지만 섹스에 대한 얘기를 하는 수준을 넘어서 남의 몸매나 얼굴을 물건 평하듯 평하고 벗은 몸을 찍어 단톡방에 올리는 파렴치한 짓을 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고작 몇 주 같이 있었는데 정신의 빤스를 이렇게 쉽게 내리는 것을 보면서 진절머리가 났고 바로 단톡방에서 나왔고 연락도 끊었다. 비록 사진의 여성분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죄송스러울 뿐이다. 그 후에 고려대 단톡방 사건 등을 접하면서 이것이 특수한 일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Posted by 쟁연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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